“대법원 ‘재판거래 의혹 문건’ 박병대 대법관이 적어줬다”

“대법원 ‘재판거래 의혹 문건’ 박병대 대법관이 적어줬다”

강경민 기자
입력 2018-09-03 16:14
업데이트 2018-09-03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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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행정처장 때 ‘사법부 국정운영 협력사례’ 문건 작성 주도 정황대통령·대법원장 2015년 8월 독대 앞두고 작성…양승태 의중 반영 가능성 조사

양승태 사법부가 몇몇 재판을 박근혜 정부의 국정운영에 협력한 사례로 소개해 ‘재판거래 의혹’을 불러일으켰던 문건을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이 주도적으로 작성한 정황이 검찰에 포착됐다.

이들 문건은 과거사·통상임금·전교조 관련 사건 등 청와대가 주시하던 재판들의 결론이 박 전 대통령 입맛에 맞게 나왔다는 내용으로, 재판거래 의혹의 ‘종합판’으로 여겨진다. 언급된 사건들 중 일부는 결론이 나기도 전에 청와대와 법원행정처가 재판에 개입한 정황이 검찰 수사로 드러나고 있다.

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신봉수 부장검사)는 최근 소환 조사한 전직 법원행정처 심의관들로부터 일부 문건의 내용을 “박 전 처장이 메모 형태로 적어줬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문건은 ‘현안 관련 말씀 자료’, ‘정부 운영에 대한 사법부의 협력사례’ 등의 제목을 달고 있는 법원행정처 문서들이다.

문건 작성에 관여한 심의관들은 “박 전 처장이 제시한 ‘국정운영 협력사례’들을 문건 형태로 정리해 보고했을 뿐”이라는 취지로 검찰에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2015년 7월 말 생산된 두 문건은 “사법부는 그동안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최대한 노력해왔다”면서 박 전 대통령의 국정운영 기조에 들어맞는 대법원 판결들을 제시했다.

문건은 과거사 관련 국가배상 소송의 소멸시효를 엄격히 적용한 판결에 대해 “부당하거나 지나친 국가배상을 제한”했다고 소개했다. 유신 시절 긴급조치 사건에 대해서는 “당시 상황과 정치적 함의를 충분히 고려”했다고 문건에 기재돼 있다.

청와대가 초미의 관심을 보였던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댓글 사건에는 “현 정권의 민주적 정당성 문제와 직결된 사건에서 공선법(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한 원심 유죄 인정 부분을 대법원에서 파기환송”했다고 노골적으로 홍보했다.

통상임금 사건과 파생금융상품 키코(KIKO) 관련 소송에 대해서는 “국가 경제발전을 최우선 고려”한 판결로, KTX 승무원 해고소송과 철도노조 파업 사건은 박근혜 정부의 노동 부문 개혁에 부합하는 판결로 제시했다.

이들 판결은 대부분 법원행정처와 청와대가 대가를 주고받으며 흥정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대법원은 “이미 결론이 난 사건들을 사후에 정리한 것”이라고 해명해왔다. 그러나 제시된 판결 가운데 전교조 법외노조 집행정지 관련 사건은 이미 문건이 작성되기 10개월 전부터 법원행정처가 정부 측 소송서류를 대필해준 정황이 검찰 수사로 드러났다. 박 전 처장은 비슷한 시기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공관에 찾아가 강제징용 소송의 처리방향을 논의하기도 한 것으로 파악됐다.

검찰은 이들 문건이 열흘쯤 뒤인 2015년 8월6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오찬회동 자리를 준비하기 위해 생산된 점으로 미뤄 양 전 대법원장의 의중도 반영됐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

양 전 대법원장은 법원 자체조사로 재판거래 의혹이 불거지자 지난 6월1일 기자들과 만나 “언제든지 행사가 있으면 말씀자료를 준다. 그런 걸 한번 쓱 보고 버려 버린다”며 “화젯거리가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말씀 자료가 나온 것”이라고 해명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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