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직원들 “이번 주에 52시간 지켰나 가물가물”비정규직 “강압적 연휴 근무”…공무원들도 추가업무 시달려
서울 종로구 광화문 네거리 인근에서 직장인들이 출근길에 오르고 있다.
서울신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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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시행된 ‘주 52시간 근무제’ 적용을 받는 대기업 직원들은 대부분 법의 울타리를 아슬아슬 넘나들었고, 교대 근무를 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추석 연휴에도 근무가 잡힌 탓에 빠듯한 귀성 계획을 세우며 울상을 지었다.
◇ 대기업 직원들 “주 52시간 겨우 지키고 고향 왔는데 ‘카톡’은 계속 울려”
한해 중에 가장 큰 ‘대목’을 맞은 유통업계 회사원들은 명절을 앞두고 업무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여느 때보다 바쁜 한 주를 보냈다.
이들은 대부분 연휴가 시작된 이후에도 업무 전화와 ‘카톡’에 시달려야 한다며 한탄했다.
대기업 기획팀에서 일하는 이지혜(26·가명)씨는 “9월 말에 큰 행사가 있어서 막바지 준비 중인데 다음 주에 추석이 끼는 바람에 관련 업체들이 다 쉰다”면서 “이번 한 주 동안 2주치 일을 끝내느라 정말 바빴다”며 한숨을 지었다.
이씨는 “회의도 몰아서 하다 보니 시간 맞추느라 저녁 미팅이 잦았다”면서 “추가 근무는 주 52시간 한도에 겨우 맞춰서 올렸지만, 퇴근 후에도 전화와 카톡을 주고받았고 연휴 기간에도 계속 수시로 연락할 것 같다. 사실상 쉬는 게 아니다”라며 푸념했다.
대기업 패션 계열사에서 일하는 김모(30)씨는 “패션 쪽은 추석 때 특수니까 매장에 상품을 다양하게 채워야 했다”면서 “물류창고에 재고 및 출고 확인 전화를 돌리느라 한 주가 어떻게 갔는지 모르겠다”면서 혀를 내둘렀다.
김씨는 “주 52시간 시행 후에 야근이 거의 없었는데 이번 주는 야근을 하지 않고는 못 배기겠더라. 정신이 없어서 주 52시간을 지켰는지도 가물가물하다”면서 “너무 바빠 추석 때 부모님 드릴 선물도 못 사서 이제야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 비정규직 전화상담사 “기차표 끊었는데 뒤늦게 연휴근무 공지”
추석 연휴에도 돌아가며 근무해야 하는 군소 사업장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제대로 쉴 수 조차 없다는 생각에 우울한 기분으로 연휴를 맞았다.
아이폰이나 애플·아이튠스 관련 고객상담을 받는 콘센트릭스서비스코리아 소속 ‘애플케어 상담사’들은 연휴를 며칠 앞두고서야 이번 주말과 추석 연휴 근무표를 고지받았다.
주말 근무는 월초에 미리 정해져 있었는데, 회사에서 갑자기 이번 주말 근무 인원을 늘린 탓에 부랴부랴 기차표나 버스표를 취소하면서 가족에게 양해를 구한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상담사 이모(29·가명)씨는 “갑자기 주말에 나오라길래 ‘표를 예매해놔서 어렵다’고 했더니 ‘그럼 명절 월화수 다 야간 조로 출근하라’는 답이 돌아왔다”면서 “직원들이 항의했더니 주말은 하루에 1만원 더 준단다. 사실 직원들이 원하는 것은 휴일수당이 아니라 대휴지만 이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이씨는 “아이폰 관련 이슈가 터지거나 하면 주 7일 출근을 하면서 주 52시간을 훌쩍 넘겨 일하기도 한다”면서 “물론 노동자들 동의를 받지만, 퇴근 시간 다 돼서 ‘전원 OT(초과근무) 진행합니다’ 이런 식으로 강압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니까 따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우체국 공무원 “행정직인데 택배 업무 늘어나…시간 외 수당도 못 올려”
일반 직장인들에게는 ‘신의 직장’처럼 여겨지는 공무원들도 명절을 앞두고 업무량이 늘어나 추가 업무에 시달렸다.
우체국의 경우 명절을 맞아 택배량이 대폭 늘어나다 보니, 일반 사무업무를 주로 보는 행정직 공무원들이 평소보다 더 자주 택배 업무에 투입됐다.
예전에는 근로 기준 시간을 훌쩍 넘기면서 일하던 집배원들이 주 52시간 한도에 맞게 일하게 되면서, 공무원이라 주 52시간제 대상이 아닌 행정직 공무원이 새벽 시간대에 들어오는 택배를 받아두는 경우가 늘어났다고 한다.
한 우체국 관계자는 “명절이 되면 2주 정도 ‘폭주 기간’이 있다”면서 “평일에 보통 1시간 정도 추가 근무를 한다면 이때는 2시간 이상 하고, 주말에도 평일처럼 아침 9시에 나와서 오후까지 일한다”고 전했다.
우체국 공무원들 사이에서는 “행정직 인원도 대폭 줄었는데 택배 쪽 일까지 하게 됐다”며 푸념이 나온다. 우정사업본부 공무원노조에 따르면 우체국 행정직 인원은 2013∼2016년 4년 사이에 총 792명이 줄었다.
게다가 우체국에는 원래 시간 외 수당을 지점 차원에서 통제하거나 자체적으로 찍지 않는 분위기가 있어서, 명절처럼 업무량이 늘어날 때면 “시간 외도 못 찍는데 일까지 더 해야 한다”는 불만도 나온다고 한다.
한 우체국 공무원은 “한 달에 10시간으로 시간 외 수당을 제한하는 지점들이 있다. 초과근무가 한 달에 10시간은 보통 넘지만, 눈치 보여서 조금만 올리거나 아예 안 올리는 사람이 대부분”이라면서 “시간 외를 많이 올리면 ‘일을 못하는 것 아니냐’는 핀잔이 위에서 내려온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