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이라 일어난 사고… 용균이 동료들은 꼭 살리고 싶다”

“비정규직이라 일어난 사고… 용균이 동료들은 꼭 살리고 싶다”

기민도 기자
입력 2018-12-20 23:12
업데이트 2018-12-21 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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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의 어머니’ 김미숙씨 인터뷰

“열악한 작업환경 본 뒤 싸우기로 결심…철저한 진상규명으로 명예회복 해줘야”
관련법안 통과 촉구 등 고통 속 강행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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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지 않는 눈물
마르지 않는 눈물 지난 11일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숨진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가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산업재해 유가족, 재난·안전사고 피해 가족 기자회견’에 참석해 흐르는 눈물을 닦고 있다. 이날 회견에는 삼성반도체 백혈병 사망자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 제주에서 현장실습 중 사망한 고교생 이민호군의 아버지 이상영씨, 스텔라데이지호 실종 선원의 가족 허경주씨 등이 참석했다.
뉴스1
“용균이 대신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라고 요구하고 싶어요.”

지난 11일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아들을 잃고 뼈가 녹는 고통을 감내하고 있는 고 김용균(24)씨의 어머니 김미숙씨는 요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어머니로 거듭나고 있다. 아들의 죽음을 추모하는 집회에 온 아들딸 같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한 명 한 명씩 안아 주고 있다. 2년 전 서울 지하철 구의역 스크린도어 수리를 하다 숨진 김모(당시 19세)군의 동료, 4년 전 세월호 참사에서 자식을 잃은 부모들을 만나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지기도 한다. 무엇보다 위험의 외주화를 막는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 재해 기업처벌법의 국회 통과를 위해 온 힘을 쏟고 있다. 이 법안들은 고 노회찬 정의당 의원이 생전에 꼭 통과시키려 했던 것이기도 하다. 아들 전태일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려고 모든 노동자의 어머니를 자처했던 이소선 여사의 심정이 지금 김씨의 마음이었으리라.

김씨는 20일 아침에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 섰다. 삼성전자 직업병 피해자 유가족 등 산업재해 피해자들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두 법안의 국회 통과를 호소했다. 계속되는 일정으로 지친 김씨는 기자회견을 마치고 아들의 빈소가 차려진 태안의료원으로 갈 계획이었다. 하지만 태안화력발전소 전면 작업 중지와 특별근로감독 과정에서의 노동단체 참여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소식이 들리자 곧바로 대전고용노동청으로 차를 돌려 달라고 부탁했다.

김씨는 대전고용노동청으로 가면서 서울신문과 전화 인터뷰를 했다. “우리 아들이 비정규직이기 때문에 죽었어요. 용균이가 대통령을 만나고 싶다고 했는데 이제 만날 수가 없잖아요. 저는 아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만 기억하고 그 뜻대로 살아갈 겁니다.” 전화 속 음성은 차분하고 담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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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경북 구미역 앞에 설치된 용균씨 추모 분향소 내부 모습. 용균씨는 구미에서 늦둥이 외동아들로 태어나 자랐다. 걸개그림은 용균씨가 사망 열흘 전 문재인 대통령에게 비정규직 노동자들과의 면담을 촉구하기 위해 찍은 인증샷을 옮긴 것이다. 구미 연합뉴스
20일 경북 구미역 앞에 설치된 용균씨 추모 분향소 내부 모습. 용균씨는 구미에서 늦둥이 외동아들로 태어나 자랐다. 걸개그림은 용균씨가 사망 열흘 전 문재인 대통령에게 비정규직 노동자들과의 면담을 촉구하기 위해 찍은 인증샷을 옮긴 것이다.
구미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 노동자와 만납시다’라고 적힌 피켓을 든 아들의 인증사진은 영영 이뤄질 수 없게 됐다. 그러나 어머니가 그 뜻을 이어받았다. 김씨는 지금 아들 대신 대통령을 만나 아들의 피켓에 쓰여 있는 대로 ‘노동악법 없애고, 불법파견 책임자 혼내고, 정규직 전환은 직접고용’으로 하자는 요구를 하고 싶어 한다.

김씨는 사고 당일인 지난 11일 탄가루가 묻은 아들의 얼굴을 태안의료원 영안실에서 봐야 했다. 늦둥이 외아들의 카카오톡 아이디가 ‘가정 행복’일 정도로 어머니에겐 한없이 살가운 자식이었다. 12일 첫 기자회견 당시만 해도 가족의 얼굴을 공개하지 않았다. 그때만 해도 아들의 동료들과 ‘김용균법’을 위해 앞장설지 결정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이튿날 아들이 일하다 사고를 당한 발전소 작업 현장을 직접 보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이름과 얼굴을 드러내고 싸우기로 했다. 현장 조사 후 김씨는 용균씨의 동료들에게 “너희들은 꼭 안전하게 일해야 한다”며 오열했다. “발만 헛디뎌도 죽을 수 있는 곳에서 아직 용균이 동료들이 일하고 있습니다. 내 아들의 죽음은 돌이킬 수 없지만 다른 아이들은 살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김씨가 아들이 일했던 9, 10호기뿐 아니라 1~8호기의 작업도 즉각 중단하라고 주장하는 이유다. “아, 제발 (일단 1~8호기도) 멈춘 다음에 제대로 정비해서 사고가 안 나도록 해놓고 가동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김씨는 “분노가 나를 일으켜 세운다”고 말했다. 철저한 진상 규명을 통해 억울하게 죽은 아들의 명예 회복을 위해서라도 더 분노하고 더 싸워야 한다고 다짐한다. 김씨 역시 안정치 못한 비정규 노동으로 근근이 생활해 온 노동자였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진짜 아무것도 모르는 아줌마였다”고 소개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줌마를 투사로 만든 건 암울한 사회일지도 모른다. “10여일 동안 노동청을 돌아다니다 보니 사회가 썩었다는 게 실감이 났어요. 유가족의 말에는 귀부터 막는 것 같았어요. 내가 믿던 나라가 ‘우리 아이들을 죽이는 나라였구나’라는 생각을 정말 많이 합니다.” 김씨는 마지막으로 시민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우리는 힘이 없어요. 그래도 우리가 생각을 바꾸고 행동하면 조금씩 조금씩 세상도 바뀔 거라 믿어요.”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2018-12-21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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