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이종석 “생명 경시 풍조 유발 우려…태아 자체로 존엄한 존재”이석태·이은애·김기영 단순위헌 의견…“법조항 바로 폐지해도 혼란 없어”
낙태죄 헌법소원 선고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낙태죄와 동의낙태죄를 규정한 형법 269조와 270조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 선고가 열리고 있다. 왼쪽부터 이영진, 이은애, 이선애, 서기석 헌법재판관, 유남석 헌법재판소장, 조용호, 이석태, 이종석, 김기영 헌법재판관. 2019.4.11 연합뉴스
헌재 내에서 보수 성향으로 분류되는 조용호·이종석 재판관은 이날 자기 낙태죄와 의사 낙태죄에 모두 합헌 의견을 냈다.
태아 역시 인간 생명으로서 국가가 당연히 보호해야 한다는 게 이들의 기본 생각이다.
이들 재판관은 “태아는 인간으로 형성돼 가는 단계의 생명으로서 인간의 내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며 “태아와 출생한 사람은 생명의 연속적인 발달 과정 아래 놓여 있다고 볼 수 있으므로 태아와 출생한 사람 사이에 근본적 차이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출생 전의 생성 중인 생명을 헌법상 생명권의 보호 대상에서 제외한다면 생명권 보호는 불완전한 것에 그치고 말 것”이라며 “태아 역시 헌법상 생명권의 주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생명권의 제한은 곧 생명권의 완전한 박탈을 의미하며, 낙태된 태아는 생명이 될 기회를 영원히 잃게 된다”며 “이런 특수성을 고려할 때 여성의 자기 결정권보다 태아의 생명권 보호를 보다 중시한 입법자의 판단은 존중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태아의 ‘독자적 생존 시기’를 구분한 다수의견에도 반대했다.
이들은 “태아의 생명권을 보호하고자 하는 공익의 중요성은 태아의 성장 상태에 따라 달라진다고 볼 수 없다”며 “임신 중의 특정한 기간에는 여성의 자기 결정권이 우선하고 그 이후에는 태아의 생명권이 우선한다고 할 수도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헌법이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는 것은 태아가 인간으로 될 예정인 생명체 그 자체로 존엄한 존재이기 때문이지, 그것이 독립하여 생존할 능력이 있다거나 사고능력, 자아인식 등 정신적 능력이 있기 때문은 아니다”고 덧붙였다.
또 다수의견이 말한 낙태의 ‘사회·경제적 사유’도 “그 개념과 범위가 매우 모호하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결국 임신한 여성의 편의에 따라 낙태를 허용하자는 것인데, 이는 낙태의 전면허용과 동일한 결과를 초래해 일반적인 생명경시 풍조를 유발할 우려가 있다”고 짚었다.
이들 재판관은 “자기낙태죄 조항으로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어느 정도 제한되는 것은 사실이나, 그 제한의 정도가 자기낙태죄 조항을 통해 달성하려고는 태아의 생명권 보호라는 중대한 공익에 비해 결코 크다고 볼 수 없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들 외에 이석태·이은애·김기영 재판관은 헌법불합치 의견보다 더 나아가 단순위헌 의견을 냈다.
이들 재판관은 낙태를 금지하고 처벌하는 방법이 태아의 생명보호란 목적 달성에 충분히 기여해오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이들은 “자기낙태죄 조항은 그동안 국가의 인구정책에 따라 실제 가동 여부가 좌우되거나, 본래의 목적과 무관하게 상대 남성 또는 주변인의 복수나 괴롭힘의 수단으로 악용되기도 했다”며 현실을 비판했다.
이어 “낙태에 대한 전면적·일률적 금지는 여성이 정확한 정보를 얻기 어렵게 하고, 음성적인 낙태를 할 수밖에 없어 적절한 의료서비스나 돌봄 등도 받기 어렵게 했다”며 임신한 여성의 생명과 건강을 충분히 보호하지 못한다고 꼬집었다.
또 “임신한 여성에게 임신 기간 전체에 걸쳐 낙태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면서 다만 예외적 허용 사유를 규정하는 건 태아의 생명보호와 임신한 여성의 자기 결정권 사이에서 태아의 생명보호를 단순하게 우선한 것”이라며 “사실상 임신한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부정 내지 박탈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그러면서 “태아가 덜 발달하고, 안전한 낙태 수술이 가능하며, 여성이 낙태 여부를 숙고해 결정하기에 필요한 기간인 임신 제1 삼분기(14주 무렵)에는 임신한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최대한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가가 생명을 보호하는 입법적 조치를 취할 때 인간 생명의 발달단계에 따라 그 보호 정도나 수단을 달리할 수 있다는 것이 이들 재판관의 생각이다.
이들 재판관은 이 같은 판단에 기초해 굳이 입법 유예 기간을 둘 필요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자기 낙태죄 조항으로 기소되는 사례가 매우 드문 점 등을 고려하면 형벌 조항의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한 만큼 이들 조항이 곧바로 폐지된다 해서 극심한 법적 혼란이나 사회적 비용이 발생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반면 헌법불합치결정을 할 경우 “기소를 일단 가능하게 한 뒤 사후입법으로 이를 해결하는 것은 형벌규정에 대한 위헌 결정의 효력이 소급하도록 한 입법자의 취지에도 반할 뿐만 아니라, 그 규율의 공백을 개인에게 부담시키는 것으로 가혹하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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