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동성커플 3000여쌍 결혼… 세상 밖 나왔지만 편견과 싸움 남아”

“대만 동성커플 3000여쌍 결혼… 세상 밖 나왔지만 편견과 싸움 남아”

김지예 기자
김지예 기자
입력 2019-08-22 22:34
수정 2019-08-23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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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 운동가 쉬즈윈·제니퍼 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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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혼을 허용하면 동성애자가 늘어난다, 사회가 혼란에 빠진다는 등 온갖 악소문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요. 오히려 성소수자도 보통 사람이고, 다른 사람들처럼 일상을 산다는 걸 자연스레 알게 됐습니다. 잔잔하지만 큰 변화입니다.”

●“동성혼 허용 3개월···그들도 같은 일상 사는 것 알게 돼”

지난 5월 아시아 국가 중 처음으로 동성의 혼인신고가 가능해진 대만에서 성소수자 운동을 주도해 온 ‘퉁즈(同志) 핫라인’(이하 퉁즈) 의 쉬즈윈(徐志雲·오른쪽) 이사장과 제니퍼 루(왼쪽) 퉁즈 활동가 겸 ‘결혼평등연합’ 수석코디네이터는 22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지난 몇 달의 변화를 이렇게 설명했다. 쉬 이사장은 “최근까지 3000여쌍의 성소수자 커플이 결혼을 했다”면서 “국가로부터의 인정은 물론 가족 등 지인들에게도 외면받지 않으리라는 믿음이 커지면서 성소수자들이 세상으로 좀더 나올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퉁즈는 대만 내 가장 큰 성소수자 인권 단체로 1998년 설립됐다. 당시 10대 성소수자들의 잇단 자살이 사회적 문제가 되면서 긴급 전화상담 기관으로 출발했다. 퉁즈란 원래 동성애자를 일컫는 말이지만, 단체는 “LGBT(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외에 더 광범위한 소수자들에게 우산이 되자”는 뜻으로 이 단어를 쓴다. 지금은 성소수자 커뮤니티, 성평등 교육, 부모 모임 등 업무를 넓혔고 2016년부터 시민단체 4곳과 결혼평등연합을 조직해 동성결혼 합법화를 이끌어 냈다. 올 가을에는 아시아 첫 트렌스젠더 퍼레이드를 계획 중이기도 하다. 단체 관계자들은 이러한 대만의 경험을 23일까지 서울에서 열리는 ‘제8회 국제성소수자협회 아시아 콘퍼런스’에서 발표하고 30여개국 활동가들과 공유한다.

●성평등 교육 등 경험 亞 콘퍼런스서 공유

두 사람은 이런 성과의 첫 번째 공신으로 2004년 시작된 성평등 교육을 꼽았다. 성평등교육법 통과 이후 초등학교부터 성소수자 인권에 대해 배운 20~30대의 동성결혼 지지율은 80%에 이른다. 제니퍼는 “2016년 법안 도입을 위한 집회에 25만명이나 참가했다”면서 “단체들은 자리만 깔았을 뿐, 성소수자가 아닌 시민들까지 소수자 권리를 위해 싸워 줬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공을 돌렸다.

법 통과로 아시아 성소수자 운동에 큰 족적을 새겼지만 이들은 “아직 할 일이 많다”고 했다. 우선 동성 커플은 입양 허가가 금지되어 있다. ‘정상 가족’의 틀이 견고하다는 의미다. 또 동성 결혼법의 공식 명칭은 ‘사법원 해석 748호의 해석과 실시에 관한 법률’로 동성 결혼이라는 단어가 없다. 쉬 이사장은 “동성결혼이라는 말을 피하고 숫자로 부르는 것은 일종의 정치적 타협”이라면서 “사회의 일원으로 인정받은 점은 기쁘지만 편견과의 싸움이 많이 남았다”고 덧붙였다.

아시아 국가들 중 선구적 사례로 평가되지만 대만에서도 혐오 세력의 힘은 강하다. 한국처럼 직접 얼굴을 맞대거나 물리적 충돌이 발생하는 형태는 아니나, 점점 조직화되고 있다는 게 이들의 우려다. 제니퍼는 “퉁즈가 학교에서 하는 강의를 학부모 단체가 막는 등 반대 세력도 커지고, 가짜뉴스도 확산되고 있다”면서 “반대 세력이 만드는 공포와 두려움을 막기 위해 한국과 대만 모두 대응법을 고민해야 할 시기”라고 덧붙였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2019-08-23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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