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즈버러 참사 생존자 “근본적 질문 답해야 유가족 위로”

힐즈버러 참사 생존자 “근본적 질문 답해야 유가족 위로”

입력 2019-11-24 22:54
수정 2019-11-25 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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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 30주기 방한… 사회학자 앤 에이어

“진실 밝혀져야 회복·법제정으로 넘어가
당시 왜 살아남았나 죄책감에 괴로워해
세월호 참사 겨우 5년… 아직 충격 단계
유가족·당사자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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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 에이어 사회학자
앤 에이어 사회학자
“근본적인 질문에 답하지 못하면 유가족들을 위로할 수도, 참사에서 배울 수 있는 것도 없습니다.”

올해 30주기를 맞은 영국 ‘힐즈버러 참사’의 생존자이자 사회학자인 앤 에이어(55)는 최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참사 당시 어떤 일이 일어났고, 왜 일어났는지 등 근본적인 질문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진실이 밝혀져야만 피해 회복, 법 제정, 사고 재발 방지에 필요한 사회문화적 변화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영국 피해자연합단체 ‘참사행동’에서 대외 협력을 담당하고 있는 에이어는 지난 21일 경기 안산에서 4·16재단이 개최한 국제포럼 ‘재난사회, 피해자 권리를 묻다’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1989년 3월 15일 발생한 힐즈버러 참사는 세계 스포츠사에 기록된 최악의 참사 중 하나다. 당시 사회학 박사과정을 마무리한 에이어는 리버풀과 노팅엄의 FA컵 준결승이 열린 영국 사우스요크셔주 셰필드의 힐즈버러 경기장을 찾았다. 그런데 경찰은 교통체증으로 늦게 도착한 리버풀팬 수천명을 이미 만석인 입석 관중석으로 밀어넣었다. 사람이 깔리는 사고가 발생하며 모두 96명이 숨지고 766명이 부상당했다. 아비규환에서 간신히 목숨을 건진 에이어는 “왜 다른 이들은 죽고 내가 살아남았는지에 대한 죄책감으로 괴로웠다”고 돌이켰다.

그는 아침마다 자책하는 자신을 발견했다고 한다. 이런 경험을 했던 에이어는 “재난 피해자들이 충격에서 벗어나려면 매우 긴 시간이 걸린다”며 “세월호 참사는 일어난 지 겨우 5년밖에 안 됐다. 5년은 (피해자들이) 여전히 충격에 빠져 있는 단계”라고 했다.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재난 관련 논문을 읽고 공부했던 에이어는 참사행동에 참여해 재난 피해자들을 도왔고 ‘기업살인법’ 등을 제정하는 데 힘을 보탰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한국 사회 일각에서 “질린다. 그만하면 됐다”는 말이 나온다고 하자 에이어는 영국도 마찬가지라고 답했다. 그는 “재난을 직접 겪기 전까지는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에이어가 재난을 경험한 사람들과 공유하고 연대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세월호 유가족을 만났을 때 서로 같은 언어를 쓰지 않았어도 특별한 유대감을 느낄 수 있었다”며 “(4·16 기억교실에서) 학생들이 쓰던 물건, 책상들을 보는데 이 사건이 나의 일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단순 사고가 아닌 경찰 과실 등을 밝혀낸 힐즈버러 참사 진상조사 보고서가 나오기까지 무려 23년이 걸렸다. 유족과 시민사회의 끈질긴 노력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경기장 안전책임자였던 데이비드 두켄필드(75) 당시 사우스요크셔 경찰서장은 과실치사 혐의로 다시 법정에 섰다. 에이어는 “힐즈버러처럼 오래 걸리지 않기 위해서는 유가족과 당사자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글 사진 안산 윤연정 기자 yj2gaze@seoul.co.kr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2019-11-25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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