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경찰 고문 탓에 죽은 내 동생…이춘재 자백 뒤에도 연락 한 번 없었다”

[단독]“경찰 고문 탓에 죽은 내 동생…이춘재 자백 뒤에도 연락 한 번 없었다”

고혜지 기자
입력 2019-11-26 17:22
수정 2019-11-26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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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화서역 살인 사건 용의자 지목돼 고문치사한 명모군 형 인터뷰
이춘재, 최근 “화서역 살인 내가 했다” 자백…강압 수사 논란 재점화
“경찰, 몸에 포승줄 감아 공중에 매달아…구타 뒤 뇌사 상태서 사망”
“지금이라도 경찰에 사과 받고 싶다…국가 상대 손배소도 알아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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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수원 화서역 여고생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돼 자백을 강요당하다 숨진 명노열(당시 16)군의 형 명모(49)씨가 경기 수원의 한 카페에서 서울신문과 만나 인터뷰하고 있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진범으로 확인된 이춘재(56)는 최근 경찰 조사에서 장기 미제로 남았던 수원 사건을 자신이 저질렀다고 자백했다. 최영권 기자 story@seoul.co.kr
1988년 수원 화서역 여고생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돼 자백을 강요당하다 숨진 명노열(당시 16)군의 형 명모(49)씨가 경기 수원의 한 카페에서 서울신문과 만나 인터뷰하고 있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진범으로 확인된 이춘재(56)는 최근 경찰 조사에서 장기 미제로 남았던 수원 사건을 자신이 저질렀다고 자백했다.
최영권 기자 story@seoul.co.kr
“이춘재가 자신의 진짜 범인이라고 자백한 뒤에도 경찰로부터 사과는 커녕 연락 한 번 받지 못했어요.”

강산이 세 번이나 변했지만, 형은 분을 삭이지 못했다. 1988년 1월 그의 동생인 명노열 군은 ‘수원 화서역 여고생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됐고 경찰의 고문과 폭행 끝에 숨졌다. 당시 동생은 16세였다. 형 명모(49)씨는 26일 서울신문과 한 첫 언론 인터뷰에서 동생의 억울함을 토로했다. 지난달 이춘재가 경찰 조사에서 “화성연쇄살인 10건 외에 4건의 살인을 더 저질렀다. 화서역 사건의 진범도 나”라고 자백할 때 형은 억장은 무너졌다. 진술대로라면 명씨도 31년 전 죽은 동생도 공권력의 피해자다.

형 명씨는 경기 수원의 한 카페에서 기자와 만나 “사과를 받아도 한은 안 풀리겠지만 동생의 명예 회복을 위해 경찰이 꼭 사과했으면 한다”면서 “어머니도 ‘진상이 낱낱이 밝혀졌으면 한다’고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가족들은 막내아들인 명군이 죽은 뒤에도 살인 용의자 꼬리표를 떼지 못했다. 이웃들의 수군거림을 피해 도망치듯 이사했다. 아버지도 결국 2004년 사망했다.

화서역 살인 사건은 1987년 12월 24일 여고생 김모(18)양이 실종됐다가 이듬해 1월 수원 화서역 인근 논에서 숨진 채로 발견된 일이다. 경찰은 명군을 성당에서 6200원을 훔친 혐의로 검거한 뒤 “사건 현장 인근에서 명군과 친구가 불을 피우고 있었다”는 목격자 진술 등을 토대로 여고생 살인 용의자로 지목했다. 수사는 고문 등 강압적으로 이뤄졌다. 당시 상황을 조사한 대한변호사협회의 인권보고서에 따르면 수원경찰서 소속 경찰관 3명이 명군에게 자백을 강요하는 과정에서 ‘비행기태우기’(몸을 포승줄로 묶고 공중에 매달아 돌리는 고문) 등의 가혹행위를 했다. 또 ‘살인 증거물’인 여고생의 시계를 찾겠다며 명군을 데리고 야산에 갔다가 명군이 “시계 행방을 모른다”고 하자 집단 구타했다. 이 보고서에는 명군이 절도를 했다는 성당의 신부가 현금을 도난당한 사실이 없고 수사관이 찾아와 도난 여부를 확인하지도 않았다고 진술한 내용 역시 포함됐다.명군은 이후 뇌사 상태에 빠졌다가 37일 만에 사망했다. 고문 연루 경찰들은 독직 및 폭행 치사 혐의로 징역 1~6년의 실형을 살았다.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피의자로 정식 입건된 이춘재. SBS ‘그것이 알고싶다’ 방송화면 캡처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피의자로 정식 입건된 이춘재. SBS ‘그것이 알고싶다’ 방송화면 캡처
형 명씨는 “지금이라도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는지 알아보고 싶다”고 말했다. 금전적 이유를 떠나 동생이 억울한 피해자였음을 인정받고 싶어서다.

이춘재를 수사 중인 경기남부청의 한 관계자는 “당시 (명군이) 범인이 아니라고 판명 났기 때문에 지금 수사본부는 관련 자료조차 가지고 있지 않다”면서 “(이춘재가 자백했다고 해서) 가족을 찾아갈 이유가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가족들은 “경찰이 막내의 무고함을 공식적으로 확인해준 적이 없다”는 입장이다.

고혜지 기자 hjko@seoul.co.kr
최영권 기자 story@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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