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일본 이미 감열지 ‘비스페놀A’ 금지…한국 규제 전무
생식독성·내분비장애 물질 ‘비스페놀A’영수증서 유럽 규제기준의 최대 60배 검출
뒤늦게 산업부 관리 추진…선진국은 금지
“안전기준 마련하고 대체용지 개발 나서야”
종이영수증. 연합뉴스
13일 국회입법조사처에서 작성한 ‘비스페놀A 함유 감열지의 유해성 및 제도 개선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비스페놀A는 캔, 병마개, 포장재의 코팅재로 사용되며 특히 종이영수증, 번호표 등에 사용하는 감열지(열에 반응해 글자를 새기는 종이)에도 많이 사용된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신용카드, 체크카드 결제를 통해 발급된 종이영수증만 129억장에 이르며 발급비용은 560억원 규모다. 비스페놀A는 환경호르몬으로 불리며 내분비계 독성이 있어 내분비계장애물질, 생식독성물질, 고위험우려물질 후보군 등으로 지정돼 있다.
●미국, 일리노이주 끝으로 전 지역 금지
지난 10월 신창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립환경과학원에 의뢰해 다중이용업소에서 사용중인 감열지의 비스페놀A 함유량을 조사한 결과 0.06~1만 2113 ㎍/g으로 집계됐다. EU의 현행 규제기준인 200㎍/g의 최대 ‘60배’에 이른다.
이에 스위스는 내년 6월부터 비스페놀A가 함유된 감열지 사용을 금지할 예정이고, EU는 내년 1월 2일부터 중량 대비 비스페놀A 함량이 0.02% 이상인 감열지는 판매 금지할 계획이다. 또 일본, 대만, 벨기에 등에서는 감열지에 대한 비스페놀A 사용을 이미 금지했다. 미국도 내년 1월 일리노이주를 마지막으로 모든 주가 감열지에 대한 비스페놀A를 금지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감열지에 대한 안전기준이나 규제대책이 마련돼 있지 않아 문제로 지적된다.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에 따르면 비스페놀A는 ‘유독물질’, ‘중점관리물질’ 등으로 규정돼 있다. 이에 따라 젖병 등 영유아 제품은 비스페놀A 사용이 금지됐고 조리기구도 0.6㎎/ℓ 이하로 사용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비스페놀A 주요 노출원 1위 음식·2위 영수증
하지만 국가기술표준원에서 관리하고 있는 안전기준을 보면 종이영수증에 대한 기준은 없다. 또 생활화학제품 및 살생물제의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제조·수입 금지가 가능한 ‘안전확인 대상 생활화학제품’에도 종이영수증은 포함돼 있지 않다.
종이영수증. 서울신문 DB
정치권의 움직임이 더 빠르다. 이동섭 바른미래당 의원은 지난 4월 고객이 종이영수증을 요구할 때를 제외하고 전자영수증 발행을 의무화하는 것을 골자로 한 ‘부가가치세법 일부개정안’을 발의했다.
우리나라와 달리 해외 선진국에서는 비스페놀A에 대한 우려가 매우 높아진 상황이다. 유럽식품안전청(EFSA)에 따르면 체내 비스페놀A에 대한 주요 노출원은 1위가 ‘음식물 섭취’였고, 2위가 ‘감열지 노출’로 조사되기도 했다.
●화장품 바른 손 더 위험…안전기준 마련 시급
특히 핸드크림이나 스킨, 로션, 립글로스 등 화장품에는 비스페놀A의 성분이 잘 묻어나게 하는 성분이 포함돼 있어 문제의 심각성이 높다.
2014년 한 해외연구 결과에 따르면 핸드크림을 바른 채 비스페놀A가 함유된 감열지를 만지는 실험을 한 결과 2초 만에 235㎍의 비스페놀A가 피부에서 묻어나왔다. 45초 뒤에는 581㎍이 묻어나온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 피부에 흡수되는 양이 증가해 묻어나는 양은 감소했지만 4분 이후에도 425㎍이나 묻어나왔다.
2016년 국내 연구에서는 대형마트 여성 계산원 5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장갑을 착용하지 않은 그룹이 장갑을 착용한 그룹에 비해 체내 비스페놀A 농도가 2배 이상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동영 입법조사처 환경노동팀 입법조사관보는 “위해성 평가를 통해 안전기준을 마련하고 독성이 적은 대체물질 개발 및 대체수단 마련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비스페놀A는 건강과 관련된 문제인 만큼 ‘사전주의 원칙’에 입각한 정책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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