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청률 2%’ 코로나로 드러난 돌봄정책 민낯…“돈 들어도 학원”

‘신청률 2%’ 코로나로 드러난 돌봄정책 민낯…“돈 들어도 학원”

김태이 기자
입력 2020-03-15 11:13
업데이트 2020-03-15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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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온종일돌봄’ 홍보하지만 사설 학원·등하원도우미만 성행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12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매탄초등학교를 방문해 돌봄교실을 살펴보고 있다. 2020.3.12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12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매탄초등학교를 방문해 돌봄교실을 살펴보고 있다. 2020.3.12 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낳은 사상 첫 개학 연기 사태가 3주째를 맞았다.

맞벌이 부부들은 “아이 보느라 정신이 없다”면서도 자녀를 학교 긴급돌봄 교실에 보내지는 않는다. 초등학교 긴급돌봄교실 신청률은 단 2%에 그쳤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졸속 추진한 ‘온종일 돌봄’의 민낯이 결국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드러났다”면서 “돌봄 체계 전반을 재설계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 허울 좋은 ‘온종일 돌봄’ 국정과제…마을돌봄 이용하라지만 아이가 갈 방법 없어

15일 교육계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는 저출산 극복을 위해 맞벌이 부부가 안심하고 아이를 맡길 수 있는 ‘온종일 돌봄체계’를 구축하겠다는 국정과제를 설정했다.

국내 맞벌이 가정의 초등학생 돌봄 수요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정책연구로는 최대 68만명, 정부 추계로는 최대 64만명이다.

현재 정부가 공급하는 돌봄 수용 인원은 40만명에 불과하다. 초등학교에서 방과 후 아이들을 봐주는 초등학교 돌봄교실(교육부)이 29만명, 지역아동센터(보건복지부)·청소년 방과후 아카데미(여성가족부) 등 마을 돌봄 기관이 11만명을 수용하고 있다.

정부는 2022년까지 64만명의 80%인 53만명 수준으로 돌봄 공급을 늘리는 것이 목표다. 초등 돌봄 공급을 34만명, 마을 돌봄 공급을 19만명으로 늘릴 계획이다.

보육 전문가들은 현 정부의 이런 정량적인 목표가 허울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개학 연기로 드러났다고 지적한다.

정부는 3개 정부 부처의 돌봄 서비스만 이용해도 아이를 종일 공공기관에 맡길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온종일 돌봄’이라는 용어를 쓴다.

아이가 아침부터 오후 5시까지는 초등학교와 돌봄교실에 있으면 되고, 저녁에는 지역아동센터 등 마을 돌봄 기관에 있으면 된다는 게 정부의 시각이다.

그러나 이런 정부의 논리에 어떤 구멍이 있는지가 코로나19 사태로 여실하게 드러냈다.

바로 ‘아이가 방과 후에 어떻게 이동하느냐’의 문제다.

정부 설계대로 아이가 초등 돌봄교실에 이어서 지역아동센터에 간다면 학교에서 센터까지 어떻게 가느냐의 문제가 생긴다.

지역아동센터는 지난해 기준으로 전국에 4천100여곳이 있는데, 아이들 하교 시간에 맞춰 차량으로 픽업하는 지역아동센터는 없다.

아이들 학교가 서로 다르고 하교 시간이 조금씩 다른 데다가 초등학생에게 교문 앞에 혼자 10∼20분 서 있으라고 할 수도 없으니 픽업 서비스가 불가능하다.

다른 무상 돌봄기관인 청소년 방과후 아카데미도 같은 문제가 있고 초등학교 1∼3학년은 수용 대상도 아니다. 유료인 다함께 돌봄센터는 등하교 서비스를 지원하지만, 전국에 160여곳밖에 없다.

◇ 돌봄 공백은 학원·등하원도우미가 메워…가정 돌봄은 여성 책임으로

‘진짜 온종일 돌봄’이 필요한 학부모들은 정부가 빠뜨린 부분을 사교육과 도우미 고용으로 메우고 있다.

맞벌이 부부들은 아이를 마을 돌봄 대신 학원에 보내거나 등하원(등하교) 도우미를 고용한다.

학원에 보내면 픽업 차량이 인근 학교 교문 앞을 돈다. 학원은 친구들과 함께 가는 경우가 많아 혼자 교문 앞에 서 있다가 사고를 당할 위험도 적다.

등하원 도우미는 아이들의 아침 등교와 오후 하교를 책임진다. 아이들을 고객 집으로 데려와 저녁 식사까지 차려주고 부모가 퇴근할 때까지 보살피기도 한다.

도우미 시급은 3∼4년 전만 해도 8천∼1만원 안팎이었으나, 최근 흉악 아동 범죄가 몇 차례 발생한 뒤로 수요가 많아져 작년부터는 1만∼1만5천원으로 뛰었다.

등하원 도우미 공급 시장의 경쟁도 치열해져서 정교사 자격증은 이제 기본이고, 교육대학원까지 졸업한 도우미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서울 강남 등 교육열이 높은 지역에서는 승합차로 아이들을 등·하교시켜주는 불법 운송업체도 암약한다.

코로나19로 학원이 휴원하고 등하원 도우미까지 일을 쉬자, 정부 대신 시장에 맡겨져 있던 돌봄의 민낯이 한 번에 드러났다.

학부모들은 아이를 그냥 집에 두거나 조부모에게 맡겼다.

정부가 ‘사회적 거리 두기’라며 권장한 가정 돌봄의 책임은 결국 대부분 여성의 어깨에 지워졌다.

서울 여의도 증권가에서 일하는 최모(39)씨는 “가사·육아노동을 남편과 정확히 5대 5로 나눈다고 자부했는데, 개학 연기 사태가 터지자 휴가를 내고 아이를 보는 건 엄마인 내 몫이 되더라”라면서 “남자는 휴가를 쓰면 회사가 눈치를 주고, 여자는 아이를 안 보면 어른들이 눈치를 준다”고 푸념했다.

◇ 학기 개학하면 다시 짧아지는 돌봄교실…“범정부 협의체 꾸려 논의해야”

이달 23일 전국 학교가 개학해 정상 수업을 시작하면 초등 돌봄교실은 다시 오후 4∼5시까지 문을 열 예정이다.

학부모들은 “평상시 돌봄도 긴급돌봄처럼 오후 7시까지 제공해야 맞벌이 부부가 신청할 수 있다”고 말한다.

교육부는 저녁 돌봄을 학교장 재량으로 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학부모가 저녁 돌봄을 신청하면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1∼2명만 있을 텐데 괜찮으시냐”며 신청하지 말라고 유도하는 경우가 많다.

돌봄 시간 연장은 학교 돌봄전담사 처우 개선과 맞물린 문제이다. 교육청, 학교, 돌봄전담사 등 고용·피고용 주체들이 함께 풀어야 하나 주체간 간극이 크다.

보육은 학교가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와 복지 당국의 일이라는 일선 학교 교사들의 뿌리 깊은 인식도 돌봄 문제를 풀어가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다.

허술한 체계와 좌고우면한 정책의 결과는 학교 돌봄의 질 저하와 사회적 빈부 현상의 노출로 나타나고 있다.

서울 노원구에 사는 학부모 조모(38)씨는 “솔직히 돈 몇십만원 더 쓰더라도 학원을 보내지, 아이들 몇 명 모아서 놀게 하는 돌봄교실에 보내고 싶겠느냐”면서 “바람직한 말은 아니지만, 마을 돌봄센터는 저소득층만 보낸다는 인식도 만연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결국 돌봄은 어느 한 부처만의 문제도 아니고, 개별 지자체나 가정의 책임으로 돌릴 문제도 아니므로 범정부 차원의 협의체 구성을 통한 해결 노력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정치하는엄마들’ 백운희 활동가는 “아이들이 저녁까지 돌봄 기관에 머무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여길 양육자는 없다”면서 “궁극적으로는 우리 사회 전반의 노동 시간이 줄거나 노동 환경이 변해야 돌봄 문제가 풀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어떤 돌봄 정책이 아이들 생애 주기와 발달 단계에 더 바람직할지에 대해 교사, 돌봄전담사, 학부모, 정부가 다 함께 고민하는 장이 있어야 한다”면서 “코로나19 같은 비상사태는 또 돌아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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