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가 재미없다”고 한달씩 무단 결석한 여중생에게 한 경찰 언니의 대화법

“학교가 재미없다”고 한달씩 무단 결석한 여중생에게 한 경찰 언니의 대화법

이기철 기자
이기철 기자
입력 2017-10-05 11:15
수정 2017-10-05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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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학생 한 명이 학교를 한달 넘게 안 나오고 있어요. 이대로 가면 유급될 게 뻔한데… 경찰에서 도와주세요”
지난 5월 서울 종로경찰서 여성청소년계에 한 중학교 교사의 전화가 걸려왔다. 이 학교 3학년 여학생(15)이 한 달 넘게 학교에 나오지 않는다는 신고였다.

학교전담경찰관(SPO) 김현경 순경은 이 여학생의 주변 친구들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이용해 학생 찾기에 나섰다. 약 열흘 뒤 가까스로 만난 이 학생은 김 순경에게 “학교, 재미없어요”라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이 학생은 치매 초기 증상을 보이는 할머니, 남동생과 함께 단칸방에 살고 있었다. 따로 사는 부친이 이따금 보내는 적은 돈으로 생활비를 삼았다.

이런 가정 상황 때문에 학생은 어릴 때부터 구청이나 사회복지기관 등 외부에서 찾아오는 이들이 많았다. 제대로 된 보살핌을 경험하지 못한 그에게 낯선 어른들의 걱정과 도움의 손길은 모두 부담일 뿐이었다.

김 순경은 ‘이 학생의 언니가 돼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리곤 매일 “뭐 해?”,“밥은 먹었어?” 등의 메시지를 보냈다. 학생은 아예 답장을 하지 않거나 대꾸를 하더라도 단답형으로 일관했다.
어느날 이 학생이 “밥을 먹지 않았다”고 답한 날, 김 순경은 “친구들 다 데리고 와!”라고 한 다음 모두에게 햄버거를 ”쐈다’.

그러자 며칠 뒤부터 휴대폰 문자 메시지로 질문과 대답을 주고받는 ‘대화’가 가능해졌다.

8월 중순이 되자 학교에서 다시 김 순경에게 연락이 왔다. 이 여학생의 결석 일수가 너무 많아서, 2학기에 1주일만 더 빠지면 유급된다는 설명이었다.

김 순경은 이 학생을 만나 자신의 중학교 시절 추억들을 늘어놓았다. 수업시간에 몰래 친구들과 간식을 먹었던 기억, 수업 끝나고 친구들과 노래방에 갔던 일 등을 얘기하자 이 학생도 비슷한 추억을 공유하며 즐거워했다.

대화가 끝날 무렵 이 여학생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학교에 갈게요. 우선 중학교는 졸업하고 나서 고등학교에 갈지 말지 생각해 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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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이 학생은 지각도 하지 않을 정도로 성실히 학교에 다닌다. 난생 처음 ‘중간고사 공부’도 하고 있다고 종로경찰서는 5일 전한다. 아직 진로를 정하지는 못했지만, 김 순경을 만나면 웃으며 수다를 떨고 미래에 대한 고민도 가끔 털어놓는다고 연합뉴스가 전했다.

이기철 기자 chul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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