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중 기자의 교육 talk] (2) 자연과 놀며 배우는 아이들

[김기중 기자의 교육 talk] (2) 자연과 놀며 배우는 아이들

김기중 기자
김기중 기자
입력 2015-11-09 23:06
업데이트 2015-11-10 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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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과정에 ‘밖에서 놀기’ 있지만 예산 싸움만 하는 교육부·교육청

“악, 거미다!” 아빠의 외침에 거실에서 놀던 첫째가 부리나케 뛰어옵니다. “어디, 어디?” 아빠의 눈길이 멈춘 방구석에 있는 거미를 첫째는 아무 거리낌 없이 손으로 척 잡습니다. 그러더니 뒤따라 들어온 둘째에게 거미를 보여줍니다. 천진난만한 둘째는 바동거리는 거미를 보더니 “검은색이야. 아주 예뻐, 아빠!” 하고 감탄합니다. 뭐가 좋은지 둘은 킥킥거리며 거미를 가지고 한참을 놀았습니다.

겁 많은 아빠와 달리 아이들은 벌레를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여섯 살 큰애는 이번 여름 방아깨비를 비롯해 온갖 종류의 벌레들을 잡았습니다. 곤충 채집망을 들고 아파트 곳곳을 돌며 동네 잠자리란 잠자리는 다 잡겠다는 의지를 불태웠습니다. 덕분에 휴일에 좀 쉬어 보려던 저는 상당히 피곤했습니다. 네 살짜리 둘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흙바닥에 앉아 땅을 파다가 발견한 지렁이를 손으로 잡기도 했습니다. 귀뚜라미를 잡겠다며 풀숲을 이리저리 들춰 보고 토끼처럼 깡충거리며 벌레를 쫓아다니곤 합니다. 꽃을 좋아하는 엄마가 아파트 단지에 피어 있는 꽃 이름들을 알려주자 제게 “아빠, 이건 무슨 꽃이고, 저건 무슨 꽃이야” 하고 가르쳐 주기도 했습니다.

지난 주말 이틀 동안 비가 내렸을 때 아이들은 비를 맞고 싶어 안달이었습니다. 비가 잠시 그친 사이 아이 둘을 데리고 산책을 나섰습니다. 산책길을 걷는 내내 고인 물을 밟아 튀겨댑니다. 그 바람에 제 바지가 더러워질까 손사래 치며 말렸지만 아빠의 얼굴엔 미소가 돌았습니다.

최근 출간된 ‘흙땅에서 맨발로 노는 아이들’이란 책에는 자연을 통해 배우는 일본 유치원 원아들의 사례가 생생하게 실려 있습니다. 도쿄 중심지에 있는 M유치원에서 원아들은 특별한 날을 제외하고는 온종일 놀이를 합니다. 아침 9시에 등원해 오전 내내 놀고, 점심 먹고 다시 놀다가 집에 갑니다. 아이들은 흙을 만지고 나무를 타며 뛰어놉니다. 저자가 “왜 이렇게 놀이 시간이 길지요?”라고 묻자 선생님은 “아이들은 놀이 속에서 배우니까요”라고 답합니다. 놀이를 반복하면서 스스로 배운다는 것입니다.

2012년부터 시행된 국가 수준 유아교육과정인 누리과정에는 ‘하루 1시간 이상 반드시 바깥에서 놀 수 있도록 하라’는 문구가 들어 있습니다. 그 덕에 아이들은 예전보다 바깥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가려고 준비하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데다 교실에서 실외로 나가는 동선도 길어 실제로는 바깥에서 노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바깥에 나갈 때는 양말을 신어야 하고 추운 날엔 목도리와 장갑으로 철저히 무장해야 합니다. 모래에 세균이 많다며 만지지도 못하게 하곤 합니다. 모래밭에서 맨발로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본 학부모가 기겁하고 민원을 넣었다는 이야기도 얼마 전 들었습니다.

아이들이 흙을 밟고 자연을 접할 시간을 늘리도록 누리과정에 좀 더 용기를 내 보는 것은 어떨까요. 하지만 지난해에 이어 올해 역시 교육부와 교육청이 예산을 두고 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교육청은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하지 않겠다 하고 교육부는 마음대로 하라며 팔짱만 끼고 있습니다. 흙바닥에서 맨발로 노는 아이들을 보려면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gjkim@seoul.co.kr
2015-11-10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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