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생 절반은 폭언 경험… “찍히면 실습 못 해” 묵인

의대생 절반은 폭언 경험… “찍히면 실습 못 해” 묵인

이근아 기자
입력 2019-01-23 21:44
수정 2019-01-24 04:21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인권위, 1763명 조사… 선배·교수가 가해

학생들 “제3자로 구성된 인권센터 필요”

“교내 댄스 동아리에선 선배에게 성행위 유사 동작에 가까운 야한 춤과 선정적인 의상을 강요받았어요.”- 의과대학 학생 A씨.

의과대학 학생들도 언어·신체적 폭력은 물론 성희롱이나 성차별적 발언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해자는 대부분 선배나 교수 등으로 피해자들은 진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 때문에 피해 사실조차 제대로 알리지 못하고 있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3일 전국 40개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학생 1763명을 대상으로 한 인권상황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의대생 10명 중 5명(49.5%)은 언어폭력을, 16%는 단체기합 등 신체적 폭력을 경험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60%는 회식 참석을 강요당했고 전체의 47%는 음주까지 강요당했다고 증언했다. 학생 B씨는 “밉보인 후배는 선배들에게 계속 술을 강요당한다”면서 “‘찍힌 학번’은 한 명당 1시간에 7병을 마시게 해 일부는 응급실에 실려가기도 했다”고 말했다.

성차별적 발언도 공공연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한 여학생은 “실습 때 ‘여자는 군대 안 가니까 투표권이 없어야 하는 거 아니냐’는 발언을 흔히 한다”면서 “특정과는 여자는 임신하니까 안 된다며 겨우 몇 년에 한 명씩 여자를 뽑는다”고 증언했다. 조사 결과 여학생의 72.8%는 성차별적 발언을 들었고 성희롱적 발언을 들은 여학생도 전체의 18.3%에 달했다.

하지만, 피해 학생들은 진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해 피해 사실을 알리지 못하고 있었다. D씨는 “실습 나가면 교수도 선배이고 레지던트도 다 선배인데, 레지던트가 교수한테 ‘쟤는 이상한 애’라고 하면 실습이 어떻게 되겠나”라고 털어놨다.

실태조사에 참여한 학생들은 문제 해결법 중 하나로 의대를 별도로 관리·전담하는 인권센터를 만들 것을 요구했다.

특히 대다수 학생들은 “대학 측에선 사건을 감추기에 급급하기 때문에 공신력 있는 제3자로 구성된 센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근아 기자 leegeunah@seoul.co.kr
2019-01-24 12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