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억 전문기자의 건강노트] 팔베개 육아론

[심재억 전문기자의 건강노트] 팔베개 육아론

입력 2012-11-05 00:00
업데이트 2012-11-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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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 나진 않지만 저도 어려서는 엄마 팔베개를 하고 잠들곤 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까닭은 엉뚱하게도 엄마의 젖가슴 때문입니다. 고만고만한 형제들이 올망졸망 태어나 자랐으니 형은 제게 엄마 젖을 빼앗겼을 것이고, 저는 동생에게 또 그 젖을 넘겨줬겠지요. 그렇다고 젖을 넘긴 대가가 따로 있었을 리도 없습니다. 젖가슴을 파고드는 저를 밀어내고 막 옹알이를 시작한 동생에게 젖을 물렸을 것입니다. 아쉬웠겠죠. 요즘처럼 상품화된 이유식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으니, 기껏 해봐야 누룽지를 부드럽게 끓인 암죽으로 배를 채웠을 것입니다. 그게 자식들에게 ‘빨려도 너무 빨려’ 마치 노각장아찌처럼 쪼글거리는 엄마 젖보다야 배 불리기에는 훨씬 나았겠지만 암죽으로는 끝내 채울 수 없는 뭔가가 틀림없이 있었을 것입니다.

엄마의 젖가슴은 세상에 태어나 처음 갖는 둥지입니다. 그 둥지 안에서 배를 채울 수 있었고, 포근하게 잠들 수 있어 쥐어박히면서도 밭은 젖을 빨려고 바둥거렸겠지요. 동생들에게 그 둥지를 넘긴 뒤 엄마로부터 받은 보상은 동생들 잠든 동안 가끔씩 팔베개를 허락받았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슬그머니 젖가슴을 더듬어 마른 젖을 빨아대다 잠들었을지도 모릅니다. 한 심리학자가 말했더군요. “아기가 엄마 젖을 빠는 것은 복합적인 목적을 가진 행위”라고요. 그저 배만 채우려는 게 아니라 젖을 빨며 두려움을 덜었을 것이고, 엄마의 심장 소리를 들으며 살아있음을 느꼈을 것입니다. 엄마 품에서 깊게 잠들 수 있었던 건 이런 까닭입니다. 팔베개에서 강고한 모계의 연대를 확인했을 테니까요.

한 의사는 “엄마 젖을 빨고, 팔베개를 하고 자란 세대와 그렇지 않은 세대가 다르다.”고 말하더군요. 전자가 가족에 대한 애착이 강하고, 정서적이며, 관계지향적인 반면 후자는 도발적·즉자적이고 가족이나 사회보다 자기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는 뜻입니다. 사람마다 선호하는 특성은 다르겠지만 제 생각에는 두 유형을 조화시키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세태가 엄마젖 안 빨리는 쪽으로 변했지만 자녀들에게 팔베개만큼은 온전히 허락하자는 뜻입니다.

jeshim@seoul.co.kr



2012-11-05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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