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80년대 전성기를 누린 뒤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프로복싱계가 최요삼 선수 후 2년 6개월 만에 터진 선수 사망 사고로 충격에 휩싸였다.
프로복서 배기석(23.부산거북체육관)은 17일 한국 슈퍼플라이급 타이틀 매치를 마치고 뇌출혈로 5시간에 걸친 수술을 받았지만 의식을 찾지 못한 끝에 21일 오전 사망했다.
10대 때 중반 복싱 글러브를 처음 끼었고 2003년 5월 프로에 데뷔한 배기석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챔피언의 꿈을 키우고 있었다.
하지만 배기석의 꿈이 이처럼 비극으로 끝나면서 국내 프로복싱의 암울한 현실도 새삼 주목받고 있다.
어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외할머니 슬하에서 남동생과 자라면서 가장 노릇을 한 배기석의 상황이 다른 프로복싱 유망주의 처지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 프로복싱은 1966년 김기수를 시작으로 1970~80년대 윤제두,홍수환,박찬희,장정구,유명우 등 세계 챔피언을 잇따라 배출하면서 국민적 사랑을 받았다.경제적으로 힘든 서민은 링에서 멋지게 경기를 펼치는 선수와 함께 울고 웃으며 위안을 받았다.
하지만 프로복싱은 이후 줄곧 하향곡선을 그렸다.야구,축구 등 화려한 대형 프로 스포츠가 출범하고 경제가 발전하면서 사람들의 시선은 더는 ‘헝그리 복서’에게로 향하지 않았다.
건강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체력 단련 수단으로 복싱에 관심을 두는 일반인은 늘었지만 정작 정통 복서의 길을 택하는 사람은 줄었다.
인기가 시들해지고 프로복서의 수도 줄어들면서 걸출한 스타가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일부 체급에서는 선수가 없어서 월간 랭킹을 발표하지 못하기도 했다.프로 선수들은 스파링파트너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상황이 이어졌다.
2000년대 들어서도 복싱은 좀처럼 인기를 회복하지 못했다.오히려 종합격투기 등으로 인기와 돈이 몰리면서 선수들의 이탈이 더 빨라졌다.
세계챔피언이 스폰서를 구하지 못해 경기를 치르지 못하거나 연기하는 경우가 속출했다.
탈북 복서로 유명한 최현미도 후원사가 없어서 방어전 자체가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가 국민체육진흥공단과 방송인 김미화 씨 등의 도움으로 4월 세계복싱협회(WBA) 여자 페더급 3차 방어전에 나설 수 있었다.
여자국제복싱협회(WIBA),여자국제복싱연맹(WIBF),세계복싱연합(GBU) 라이트플라이급 통합 챔피언인 프로복서 김주희도 지난 2월 두 체급 통합 챔피언에 도전하려다가 후원사가 없어서 무산됐다.
결국 통합 챔피언에 오른 지 1년 만인 오는 9월4일 통합 타이틀 방어전 및 세계복싱연맹(WBF) 챔피언 결정전을 치르게 됐다.
그나마 남자 복서의 경우에는 세계챔피언을 한 명도 보유하지 못하고 있다.
유일한 세계 챔피언이었던 김지훈이 미국 등 더 큰 무대에서 뛰겠다며 지난 1월 국제복싱기구(IBO) 주니어라이트급(슈퍼페더급) 챔피언 타이틀을 반납했다.
현재 프로복서들은 라운드당 10만원의 대전료를 받는다.8라운드까지 뛰면 80만원인데 매니저,트레이너 몫과 세금을 떼고 나면 절반 가량을 손에 쥘 수 있다.
그나마 한국 챔피언 타이틀 매치에서는 200만원의 대전료가 걸리지만 1년에 몇 차례밖에 경기를 치를 수 없는 복싱 종목의 특성을 고려하면 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와중에 프로모터,매니저,체육관장 등 복싱 관계자들은 현실 개선보다는 밥그릇 싸움에 열을 올리기도 했다.
한국권투위원회(KBC)는 선수들의 건강보호기금(건보금)을 마련해왔지만 지난 수년 동안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기금이 거의 바닥난 상태다.
건보금은 대전료 가운데 1%를 적립해 경기 중 부상한 선수들의 치료 재원으로 쓰게 된다.
하지만 들어오는 건보금보다 선수 치료에 쓰이는 돈이 훨씬 많아 금액이 계속 줄어들고 있었고,몇년 전 직원의 횡령까지 불거지면서 기금이 바닥났다.
이 밖에도 가짜 복서 및 선수 바꿔치기 파문,대전료 착복 등 잡음이 계속되면서 프로복싱의 인기하락을 부채질했다.또 일부 권투인들이 지난 1월 김주환 현 회장에 대한 직무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내는 등 내홍이 계속되고 있다.
연합뉴스
프로복서 배기석(23.부산거북체육관)은 17일 한국 슈퍼플라이급 타이틀 매치를 마치고 뇌출혈로 5시간에 걸친 수술을 받았지만 의식을 찾지 못한 끝에 21일 오전 사망했다.
10대 때 중반 복싱 글러브를 처음 끼었고 2003년 5월 프로에 데뷔한 배기석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챔피언의 꿈을 키우고 있었다.
하지만 배기석의 꿈이 이처럼 비극으로 끝나면서 국내 프로복싱의 암울한 현실도 새삼 주목받고 있다.
어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외할머니 슬하에서 남동생과 자라면서 가장 노릇을 한 배기석의 상황이 다른 프로복싱 유망주의 처지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 프로복싱은 1966년 김기수를 시작으로 1970~80년대 윤제두,홍수환,박찬희,장정구,유명우 등 세계 챔피언을 잇따라 배출하면서 국민적 사랑을 받았다.경제적으로 힘든 서민은 링에서 멋지게 경기를 펼치는 선수와 함께 울고 웃으며 위안을 받았다.
하지만 프로복싱은 이후 줄곧 하향곡선을 그렸다.야구,축구 등 화려한 대형 프로 스포츠가 출범하고 경제가 발전하면서 사람들의 시선은 더는 ‘헝그리 복서’에게로 향하지 않았다.
건강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체력 단련 수단으로 복싱에 관심을 두는 일반인은 늘었지만 정작 정통 복서의 길을 택하는 사람은 줄었다.
인기가 시들해지고 프로복서의 수도 줄어들면서 걸출한 스타가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일부 체급에서는 선수가 없어서 월간 랭킹을 발표하지 못하기도 했다.프로 선수들은 스파링파트너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상황이 이어졌다.
2000년대 들어서도 복싱은 좀처럼 인기를 회복하지 못했다.오히려 종합격투기 등으로 인기와 돈이 몰리면서 선수들의 이탈이 더 빨라졌다.
세계챔피언이 스폰서를 구하지 못해 경기를 치르지 못하거나 연기하는 경우가 속출했다.
탈북 복서로 유명한 최현미도 후원사가 없어서 방어전 자체가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가 국민체육진흥공단과 방송인 김미화 씨 등의 도움으로 4월 세계복싱협회(WBA) 여자 페더급 3차 방어전에 나설 수 있었다.
여자국제복싱협회(WIBA),여자국제복싱연맹(WIBF),세계복싱연합(GBU) 라이트플라이급 통합 챔피언인 프로복서 김주희도 지난 2월 두 체급 통합 챔피언에 도전하려다가 후원사가 없어서 무산됐다.
결국 통합 챔피언에 오른 지 1년 만인 오는 9월4일 통합 타이틀 방어전 및 세계복싱연맹(WBF) 챔피언 결정전을 치르게 됐다.
그나마 남자 복서의 경우에는 세계챔피언을 한 명도 보유하지 못하고 있다.
유일한 세계 챔피언이었던 김지훈이 미국 등 더 큰 무대에서 뛰겠다며 지난 1월 국제복싱기구(IBO) 주니어라이트급(슈퍼페더급) 챔피언 타이틀을 반납했다.
현재 프로복서들은 라운드당 10만원의 대전료를 받는다.8라운드까지 뛰면 80만원인데 매니저,트레이너 몫과 세금을 떼고 나면 절반 가량을 손에 쥘 수 있다.
그나마 한국 챔피언 타이틀 매치에서는 200만원의 대전료가 걸리지만 1년에 몇 차례밖에 경기를 치를 수 없는 복싱 종목의 특성을 고려하면 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와중에 프로모터,매니저,체육관장 등 복싱 관계자들은 현실 개선보다는 밥그릇 싸움에 열을 올리기도 했다.
한국권투위원회(KBC)는 선수들의 건강보호기금(건보금)을 마련해왔지만 지난 수년 동안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기금이 거의 바닥난 상태다.
건보금은 대전료 가운데 1%를 적립해 경기 중 부상한 선수들의 치료 재원으로 쓰게 된다.
하지만 들어오는 건보금보다 선수 치료에 쓰이는 돈이 훨씬 많아 금액이 계속 줄어들고 있었고,몇년 전 직원의 횡령까지 불거지면서 기금이 바닥났다.
이 밖에도 가짜 복서 및 선수 바꿔치기 파문,대전료 착복 등 잡음이 계속되면서 프로복싱의 인기하락을 부채질했다.또 일부 권투인들이 지난 1월 김주환 현 회장에 대한 직무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내는 등 내홍이 계속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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