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더반서 WBA 세계챔피언 먹은 홍수환씨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은 한국에 행운의 도시다. 벌써 36년 전 일이다. 프로 복서 홍수환이 1974년 세계복싱협회(WBA) 밴텀급 타이틀전에서 아널드 테일러를 누르고 세계챔피언이 된 바로 그곳이다. 당시 아무도 예상 못했었다. 테일러는 강자였고 홍수환은 아시아 변방의 촌놈이었다. 독기 하나로 겁 없이 도전했다.1974년 남아공 더반에서 열린 세계복싱협회(WBA) 밴텀급 타이틀전에서 아널드 테일러를 15회 판정승으로 누르고 챔피언에 등극한 홍수환(가운데).
서울신문 포토라이브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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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는 15회까지 가는 악전고투였다. 넘어질 듯 안 넘어진 홍수환은 끝내 이겼다. 경기가 끝난 뒤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를 외쳤다. 공교롭게도 한국 축구대표팀이 23일 이런 더반에서 나이지리아와 월드컵 조별예선 마지막 결전을 치른다. 모든 면에서 당시와 상황이 비슷하다. 꼭 이겨야만 하는 혈전이다. 객관적 전력에서도 우리가 낫다고 할 여지가 별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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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홍수환은 “기죽을 필요도 긴장할 필요도 없다.”고 했다. 20일 서울신문과 통화에서 축구 대표팀을 향한 응원메시지를 전했다. 그는 “어떤 상황에서건 평상심이 가장 중요하다. 평소처럼 편안한 마음으로 경기할 때 더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아무리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고 달라붙으면 항상 좋은 결과가 나오더라.”고도 했다. 사실이다. 홍수환은 1977년 WBA 슈퍼밴텀급 타이틀전에서 헥토르 카라스키야에게 2회 4번 다운된 끝에 3회 역전 KO승을 거둔 적도 있다. 그는 “끝까지 할 수 있다고 믿고서 죽을 힘을 다하면 된다. 포기하지만 않으면 꼭 이길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여러 가지로 징조가 좋다.”고도 했다. 그는 “당시 더반에서 테일러는 초록 팬티를 입었었고 나는 우리 대표팀의 상징색 빨간 팬티를 입었었다. 내가 이긴 것처럼 축구대표팀도 꼭 승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분 좋은 우연이다. 더반이 축구대표팀에게도 행운의 땅이 될 수 있을까. 이제 딱 2일 뒤면 판가름난다.
박창규기자 nada@seoul.co.kr
2010-06-21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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