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영 자책골 맘고생 날린 프리킥

박주영 자책골 맘고생 날린 프리킥

입력 2010-06-24 00:00
수정 2010-06-24 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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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절을 모른 그의 오른발 ‘한국 메시아’로 우뚝서다

2004년 10월9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프르에서 열린 아시아 청소년축구선수권 결승 한국-중국전. 아직 소년티를 벗지 못한 등번호 ‘10번’이 전반 37분 문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들어가며 수비수 4명을 차례로 제치고 골을 터뜨렸다. 이제껏 한국 선수가 보여 주지 못했던 아름다운 몸놀림에 팬들은 물론 동료들도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한국은 우승컵을 차지했고, ‘10번’은 득점왕과 최우수선수(MVP)상을 휩쓸었다. 그해 아시아축구연맹(AFC) 최우수 신인상도 받았다. 한국 공격수의 새로운 모델을 창조한 박주영(25·AS모나코)이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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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영이 23일 더반의 모저스마비다 스타디움에서 열린 B조 조별리그 3차전에서 나이지리아 수비수들의 태클을 피해 넘어지며 슈팅을 날리고 있다. 더반 연합뉴스
박주영이 23일 더반의 모저스마비다 스타디움에서 열린 B조 조별리그 3차전에서 나이지리아 수비수들의 태클을 피해 넘어지며 슈팅을 날리고 있다.
더반 연합뉴스


5년여가 흘렀다. 23일 남아공월드컵 B조 조별리그 한국-나이지리아전. 박주영은 1-1로 맞선 후반 4분 대니 시투(볼턴)의 파울로 아크 왼쪽에서 프리킥을 얻어 냈고 직접 키커로 나섰다. 한 번 숨을 고른 그는 오른발로 강하게 감아 찼다. 예리하게 휘어진 공은 오른쪽 네트를 출렁였다. 그동안 그의 어깨를 짓누르던 월드컵 불운을 말끔히 털어버리는 순간.

‘축구천재’ 박주영의 인생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2005년 K-리그 FC서울에서 데뷔한 박주영은 18골을 몰아치면서 득점 2위에 올랐다. 그를 보기 위해 구름관중이 몰렸다. 한 박자 빠른 슈팅과 폭넓은 시야에서 나오는 패스 능력, 유연한 드리블은 물론 타의 추종을 불허한 골 결정력까지. 스트라이커의 모든 덕목을 갖춘 스타 플레이어의 탄생은 ‘박주영 신드롬’으로 이어졌다.

2005년 6월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에서 박주영은 또 한 번 진가를 드러냈다. 왼쪽 팔꿈치 탈골 부상을 안고 출전한 나이지리아전에서 0-1로 뒤진 후반 3분 페널티킥을 얻었지만 실축했다. 하지만 후반 44분 프리킥 동점골을 터뜨렸다. 인저리 타임에는 강력한 슈팅으로 백지훈의 역전골을 만들어 냈다.

당연히 2006독일월드컵 대표팀에도 승선했다. 그러나 막상 본선에서는 이렇다 할 활약을 보이지 못했다. 외려 스위스와의 3차전에서 선제골의 빌미가 된 프리킥을 허용했다. K-리그에서도 혹독한 ‘2년차 징크스’를 겪는 등 시련이 찾아왔다. 의욕을 잃었다는 얘기도 흘러나왔다. 천재에게 새로운 동기부여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2008~09시즌 박주영은 프랑스 리그1의 AS모나코에 입단했다. 첫 시즌 31경기에서 5골 6도움, 2009~10시즌 26경기에서 8골 3도움. 완전히 다른 레벨의 선수로 올라섰다. 남아공월드컵 대표팀의 투톱 한 자리는 당연히 그의 몫이었다. 부담이 너무 컸던 것일까. 그리스와의 1차전에서 끊임없이 찬스를 만들어 내고도 정작 마무리를 못 지었다. 2차전에서는 세트피스에서 수비에 가담했다가 공이 그의 무릎을 맞고 골문으로 빨려들어 갔다. 웬만한 선수라면 주저앉을 상황. 하지만 박주영은 눈물을 닦고 일어서 첫 원정 16강의 일등공신이 됐다. 아르헨티나 팬들이 리오넬 메시(FC바르셀로나)를 ‘축구의 메시아’라고 부르듯 이젠 박주영을 한국 축구의 메시아라고 불러도 될 듯싶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2010-06-24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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