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신의 아들/이춘규 논설위원

[씨줄날줄] 신의 아들/이춘규 논설위원

입력 2010-04-02 00:00
업데이트 2010-04-02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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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수도 도쿄 핵심요지에 ‘천황(天皇·일왕)’이 사는 왕궁이 있다. 19세기 후반부터 왕궁으로 이용되고 있다. 왕궁에서는 매년 1월2일 수차례 일본 국민의 신년인사회가 열린다. 수만명의 국민들이 찾아가 2층 베란다에 나와 손을 흔드는 일왕을 향해 “천황폐하 만세”를 뜨겁게 외치며 인사를 올린다. 신처럼 떠받든다는 인상을 준다. 실제 일 왕족은 국민들은 갖고 있는 성(姓)이 없다. 일반 국민의 의무도 다수 면제된다. 신이라고는 하지 않지만 ‘아주 특별한’ 존재이다.

일왕이 신의 아들로 본격 자리매김한 것은 1867년 메이지유신 이후다. 메이지유신은 일본이 서양에 뒤진 것을 우려한 존왕개국 세력이 이끌었다. 그 이전 일왕은 가마쿠라바쿠후 이후 675년간 신하들에게 줄 녹봉도 없고, 왕궁에 비가 샐 정도로 아주 고단한 신세였다. 신이 아닌 인간이었다. 그런 일왕을 메이지유신 세력이 건국신화를 기초로 신의 위치로 격상시켜 일본 국민 통합의 중심으로 삼았다.

유신세력은 불교를 탄압하고 신토를 대대적으로 보급해 일왕을 신격화했다. 근대화를 달성해 한반도와 중국, 동남아를 침략했다. 메이지, 다이쇼, 쇼와 일왕은 국가원수로서 군통수권을 가졌다. 그리고 쇼와 일왕은 2차대전의 중심에 섰다. 가미카제 특공대들은 천황폐하 만세를 외치면서 죽어 갔다. 일제가 미국에 패한 뒤에야 일왕은 점령군사령부의 뜻을 따라 1946년 1월 인간으로 돌아왔다.

이후 일왕은 신도, 국가원수도 아닌 상징적인 존재로만 인식돼 왔다. 패전 뒤 일 왕실 범위도 대폭 축소됐다. 일왕들은 측실(후궁)들이 있어 측실 소생 일왕도 다수였지만 다이쇼 시대(1912~26)에 폐지됐다. 측실제도가 없어진 지 1세기가 되어 가고, 왕실이 축소되며 왕실에 남자가 적어 대를 잇기 힘든 상황이다. 왕세자는 외동딸만 있고 둘째 왕자가 늦둥이 외아들을 낳아 네 살이 됐지만 안정적인 왕위계승은 여전히 일 왕실의 과제다. 왕실이 여러 문제로 편치 않다.

이 시기 경제마저 잃어버린 20년이라는 장기불황에 시달리며 일왕이 신으로 부활하려 한다. 문부과학성이 검정을 마친 초등학교 교과서 5종 모두 일왕이 신의 자손임을 암시하는 건국신화를 새로 추가했다. 니혼분쿄출판의 교과서 1종은 ‘신의 자손이 천황이 되어 국가를 통일해 간다.’고 기술할 정도다. 일본 정부와 국민이 자학사관을 버리고 국수주의로 내달리나. 벌써 태양신의 아들 일왕이 중심이었던 군국주의 망령이 어른거린다.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2010-04-02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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