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원칼럼] 핵안보정상회의 개최의 빛과 그림자/정인학 언론인

[객원칼럼] 핵안보정상회의 개최의 빛과 그림자/정인학 언론인

입력 2010-04-20 00:00
업데이트 2010-04-20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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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원자력이 도약의 전기를 맞고 있다. 원자력 발전을 시작한 지 불과 32년 만에 세계 원자력의 총아로 떠오르며 세계 속의 원자력으로 탈바꿈을 시작한다. 세계 원자력의 맹주격인 프랑스 아레바를 제치고 아랍에미리트연합(UAE)에 원자력 발전 수출을 성사시킨 데 이어 이번엔 핵안보정상회의 두번째 회의를 주최하게 되었다. 핵안보정상회의는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완장을 두르고 거들먹거리던 감시 일변도의 세계 원자력 정책과는 출발점이 다르다. 세계 각국이 감시자 겸 피감시자의 당사자가 되어 스스로 원자력을 평화적으로만 활용토록 하자는 새로운 지평이다. 핵안보정상회의 개최는 세계 원자력 정책에서 방관자였던 한국을 주연 배우로 변신시키는 정상 외교의 쾌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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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학 언론인
정인학 언론인
한국의 원자력은 발전량으로 보면 세계 다섯 번째이고, 원자력 발전 기술의 중요 지표인 발전소 이용률은 93%를 웃도는 세계 최고다. 원자력 발전소 하나를 건설해 내는 기간은 50개월 남짓으로 세계 정상의 기술력과 건설공정 관리력을 보유하고 있다. 원자력은 국내 전기의 40%를 감당하고 있으며 석탄의 절반, 석유나 가스의 25%에 불과한 싼 값으로 전기를 공급해 준다. 그러나 화려한 한국 원자력의 뒤안길에는 그 금자탑만큼이나 길고 짙은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이는 정부가 정상외교로 일궈낸 원자력 수출에 이은 2012년 핵안보정상회의를 한국 원자력이 세계 원자력으로 도약하는 구름판으로 삼기 위해서 극복해야 할 독소들이다.

지난해 7월이었다. UAE의 원자력 발전소 수주 경쟁이 본격화될 무렵이었다. 한 유력 신문이 원전 수출 과정에서 유념해야 할 과제를 다룬 기사를 내보냈다. 그러자 한국 원자력 전체를 관장하는 공기업인 한국수력원자력에서 일대 소동이 벌어졌다고 한다. 신문 보도를 원전 수출을 훼방하려는 악(惡)으로 규정하고, 내부 제보자를 찾기 위해 사원의 휴대전화 통화내역은 물론 이메일과 회사전화 통화기록을 샅샅이 뒤졌다. 신문 보도 내용은 사실이었지만 최고 경영자의 지시로 빚어진 소동은 보름이 넘게 이어졌다. 시시비비를 떠나 외부 지적은 악이라고 배격하는 한국 원자력의 극단적인 기밀주의가 빚어낸 안쓰러운 해프닝이었다.

극단적인 기밀주의는 자칫 공기업의 혼(魂)마저 망각하게 하기 십상이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제1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에 따라 오는 2030년까지 19기의 원자력 발전소를 추가로 건설하도록 되어 있다. 필요한 재원마련을 위해 지난해 6월, 6.25%의 표면금리로 5년 후에 갚기로 하고 해외에서 10억달러를 차입했다. 문제는 6.25%의 이자를 주고 외화를 빌려서 이익이 생기면 70% 범위 내에서 배당을 받는다는 조건으로 프랑스 아레바사에 무려 1억 2900만유로를 투자했다는 점이다. 아레바의 핵농축 사업이 이익을 낼 때까지 무이자로 사업자금을 대준 셈이었다. 내부적으로 문제가 안 될 리 없었다. 이사회 역시 그냥 넘어갈 리 없었다.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전체 차입금의 13%가 그대로 넘어갔다. 개인 기업이라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경영적 판단이었다. 더구나 당시 프랑스 아레바사와는 UAE 원전 수출을 놓고 사생결단을 하던 터였다.

우리는 자동차, 반도체 기술을 처음에 모두 다른 나라에서 배웠다. 그들을 따라잡으려고 몸부림쳤고, 그리고 지금은 맨 앞자리에 섰다. 기계적 기술을 완성하는 한편 글로벌 기업다운 기업문화를 만들어 냈다. 지금 세계의 원자력으로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는 한국 원자력은 자기 보호적인 기밀주의를 극복해야 한다. ‘원자력 사람들’이 독점했던 한국의 원자력을 국민의 원자력이 되도록 벽을 허물어야 한다. 그리고 세계 기업의 혼을 형상화해야 한다. 극단적 기밀주의와 국민의 무관심에 편승한 반기업적 원자력 경영을 반성해야 한다. 정부가 외교적으로 마련해 준 한국 원자력의 도약대를 결코 헛디뎌서는 안 될 것이다.
2010-04-2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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