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국제 신사’와 ‘국민 호감’ /서동철 논설위원

[씨줄날줄] ‘국제 신사’와 ‘국민 호감’ /서동철 논설위원

입력 2015-11-22 18:10
업데이트 2015-11-22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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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세계 12대 야구 강국이 참여한 ‘프리미어 12’에서 우승하는 과정은 어떤 시나리오 작가도 쉽사리 써 내지 못했을 드라마였다. 일본과의 준결승전은 브루스 윌리스가 주연한 할리우드 영화 ‘식스 센스’보다 더한 극적 반전이었다. 그런데 두 주일 남짓 이어진 드라마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대사는 김인식 감독이 결승전 전날 농반진반으로 이야기했다는 “어제도 해물탕 먹고 이겼으니 오늘도 해물탕 먹어야지”였다. 여유로운 표현에 담긴 승부에 대한 강한 집념이었다.

김인식 감독이 가진 능력의 원천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이번 대표팀은 선수 선발 과정에서 악재가 겹치면서 ‘사상 최약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김인식 리더십’이 흔들리기는커녕 오히려 국내용을 넘어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준결승에서 일본을 누른 직후 기자들에게 둘러싸였다. 잘 던지던 오타니 쇼헤이를 고쿠보 히로키 감독이 강판시킴에 따라 결과적으로 한국이 승리한 것을 두고 질문이 잇따랐다.

김 감독은 “상대의 사정은 그 팀 감독이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이라면서 오타니 투수를 바꿀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지 않았겠느냐는 취지로 고쿠보를 배려했다. 그러면서 “야구에서 승부는 누구도 예상할 수 없는 것이고, 오늘처럼 강자가 약자에게 지는 경우도 있다”고 망연자실한 일본인들을 위로했다. 현지 반응은 ‘신사 감독의 패자 배려’로 뭉뚱그릴 수 있다. ‘좋은 감독’을 넘어 ‘명장’이라는 표현도 있었으니 적장에 대한 이 이상의 찬사는 없다.

김 감독이 ‘프리미어 12’를 계기로 ‘국민 감독’에서 ‘국제 신사’로 발돋움했다면 내야수 오재원은 ‘국민 비호감’에서 일약 ‘국민 호감’으로 변신한 케이스다. 그는 소속팀인 두산 베어스에서도 2루수를 맡고 있다. 김 감독과는 한 세대를 넘는 연륜의 격차가 있는 오재원이 살아가는 방식 역시 김 감독과는 완전히 다르다.

그라운드에 집념을 쏟아낸다는 점에서 김 감독과 오재원은 닮은꼴이다. 하지만 김 감독의 ‘트레이드 마크’가 ‘상대에 대한 배려’라면 오재원의 그것은 ‘상대에 대한 도발’이다. 그러니 KBO리그에서 두산이 아닌 다른 팀을 응원하는 팬들에게 오재원은 밉상 그 자체다. 원성을 부르는 과장된 리액션이 잦은 것은 그만큼 경기력이 뛰어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오재원은 준결승 대역전의 발판을 만들었다. 선두 타자로 나서 안타를 치고는 역전 결승타라도 때린 것처럼 자극적인 몸짓을 했다. 결과적으로 상대의 자신감을 잃게 만든 이 액션은 사실 늘 하던 그대로였다. 야구팬들은 “상대 팀 선수일 때는 얄미웠는데, 우리 팀 선수로 그 모습을 보니 오히려 자랑스러웠다”고 입을 모았다. 그는 그렇게 ‘국민 호감’이 됐다. 이런 국민의 응원이 대표팀에 가진 것 이상의 힘을 내게 했다. 무엇보다 감동이 있는 스토리는 두 사람에 그치지 않는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 @seoul.co.kr
2015-11-23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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