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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룡 자처한 37세 영조, 노년의 회한 81세 영조… 현판에 담긴 조선의 이상과 역사

잠룡 자처한 37세 영조, 노년의 회한 81세 영조… 현판에 담긴 조선의 이상과 역사

류재민 기자
류재민 기자
입력 2022-06-05 21:42
업데이트 2022-06-06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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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이상을 걸다, 궁중 현판’展

유교적 이상 국가 꿈꾼 조선왕조
가치관·소망 담긴 현판에 공들여
유네스코 지역목록 81점 등 전시
왕의 서체 ‘어필 현판’ 영조가 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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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진행 중인 ‘조선의 이상을 걸다, 궁중 현판’ 전시에서 영조가 37세에 쓴 ‘건구고궁’(乾九古宮)과 81세에 쓴 ‘억석회만’(憶昔懷萬)이 위아래로 나란히 걸려 있다.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진행 중인 ‘조선의 이상을 걸다, 궁중 현판’ 전시에서 영조가 37세에 쓴 ‘건구고궁’(乾九古宮)과 81세에 쓴 ‘억석회만’(憶昔懷萬)이 위아래로 나란히 걸려 있다.
건구(乾九)란 ‘주역’에 등장하는 말로 승천하지 않고 숨어 있는 용, 즉 잠룡(潛龍)을 뜻한다. 37세의 영조는 왕이 되기 전 살았던 창의궁에 잠룡이 머물던 궁이란 의미로 ‘건구고궁’(乾九古宮)이란 현판을 달았다. 힘 있는 필체로 자신을 잠룡으로 비유한 현판을 통해 권위를 드러내고 싶었던 영조를 느낄 수 있다.

81세의 영조는 경희궁 도총부에 ‘옛일을 생각하니 만 가지가 그립다’는 뜻의 ‘억석회만’(憶昔懷萬)이란 현판을 달게 한다. 힘없이 흘려 쓴 노년의 글씨에선 젊었을 때의 자신감은 사라졌다. 위아래로 좁은 간격을 두고 배치된 두 현판은 영조의 세월을 압축적으로 상상하게 한다.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오는 8월 15일까지 진행하는 ‘조선의 이상을 걸다, 궁중 현판’은 현판을 통해 조선 왕조의 가치관과 역사를 살필 수 있는 전시다. 2018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아시아태평양 지역목록’에 등재된 81점의 궁중 현판과 관련 유물 등 총 100여점이 전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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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운궁(가운데 단독 현판)을 비롯해 전시관 내부에 전시된 다양한 현판들.
경운궁(가운데 단독 현판)을 비롯해 전시관 내부에 전시된 다양한 현판들.
한반도에서 현판은 삼국시대부터 사용됐다. 유교적 이상 국가를 꿈꿨던 조선은 현판에 특히 공을 들였다. 왕조 초기 태조의 명을 받은 정도전이 경복궁을 비롯해 궁궐 안 주요 전각과 문의 이름을 지으면서 조선 현판의 역사가 시작됐다. 124×374㎝의 크기로 전시작 중 가장 큰 ‘대안문’(大安門·덕수궁 대한문의 원래 이름)을 통해 크게 편안하기를 기원했던 것처럼 예치(禮治·예로써 다스림)의 나라 조선은 지켜야 할 도리나 가치관, 소망 등을 현판에 담아 높이 걸어 이상을 좇게 했다.

현판들은 일제강점기 때 수난을 당하기도 했다. 일제가 궁궐을 훼손하면서 현판들도 자리를 잃고 오랜 시간 떠돌았고, 2005년 국립고궁박물관 개관과 함께 박물관에 정착했다.

현판이라고 다 같은 현판이 아니다. 누가 썼고,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따라 완결성이 달라졌다. 고급 현판에는 피나무나 잣나무를 썼고, 테두리에 화려한 무늬를 더해 위상을 높였다. 글씨색도 황색, 흰색, 검은색 순으로 위계질서가 있다. 왕의 서체로 새겨진 ‘어필 현판’은 왕의 품격과 위엄을 보여 주는 유물로, 박물관이 소장한 775점의 현판 중 영조의 현판이 85점에 달한다. 52년의 최장기 재위 기간에 더해 어필을 남기기 좋아한 영조의 영향이다.

전시는 프롤로그, 1부 ‘만들다’, 2부 ‘담다’, 3부 ‘걸다’, 에필로그로 구성됐다. 관람객들은 전시 구경뿐만 아니라 창덕궁과 창경궁의 배치도인 ‘동궐도’ 그림에 디지털 현판을 만들어 걸 수 있다. 관람객들은 “학교 가기 싫다”, “종강시켜 주세요” 등의 문구로 조선 왕조의 거창한 소망 못지않게 간절한 오늘날의 소망을 담기도 했다.
글·사진 류재민 기자
2022-06-06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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