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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 간첩, CIA…“나는 저주를 받았죠”

스파이, 간첩, CIA…“나는 저주를 받았죠”

오경진 기자
오경진 기자
입력 2024-04-19 01:44
업데이트 2024-04-19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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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조자
비엣 타인 응우옌 지음/김희용 옮김
민음사/680쪽/1만 8000원

베트남전쟁서 이중간첩 고뇌
경계인 정체성 작가 자신 투영
박찬욱 감독이 드라마로 제작
소설보다 더 강렬하고 직설적
박 “코미디로 부조리 드러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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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계 미국 작가 비엣 타인 응우옌
베트남계 미국 작가 비엣 타인 응우옌
“나는 스파이, 고정간첩, CIA 비밀요원, 두 얼굴의 남자입니다. … 나는 그저 모든 문제를 양면의 관점에서 생각해 볼 수 있을 따름입니다.”(소설 ‘동조자’ 첫 단락)

“나는 스파이, 고정간첩, 밀정, 두 얼굴의 남자입니다. 모든 일의 양면을 보는 저주를 받았죠.”(드라마 ‘동조자’ 1화 중)

‘경계인’으로서 느끼는 딜레마를 함축한 강렬한 첫 문장을 빼놓고는 베트남계 미국 작가 비엣 타인 응우옌(53)의 소설 ‘동조자’를 이야기할 수 없다. 이 작품의 모든 연구와 비평은 현실에서 베트남과 미국 그 어느 곳에도 제대로 속하지 못한 작가의 정체성에서부터 시작한다. 소설에서 프랑스인 사제 출신 아버지와 베트남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설정된 주인공은 작가의 대변자로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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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원작으로 한 동명의 드라마가 지난 15일 쿠팡플레이를 통해 공개됐다. 그것도 한국 영화를 대표하는 거장 박찬욱(61) 감독의 손에서 재탄생하며 원작 역시 다시 조명받고 있다. 미국 HBO 오리지널 시리즈로, 2018년 BBC ‘리틀 드러머 걸’ 이후 박 감독의 두 번째 시리즈물 도전이다. 7부작 가운데 1~3회를 연출한 박 감독은 캐나다의 영화감독 돈 매켈러와 함께 공동 쇼 러너로서 제작, 각본 등 전 과정을 진두지휘했다. 4~7회는 영국의 마크 먼든과 브라질의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이 나눠 맡았다.

도입부에서 확인할 수 있는 소설과 드라마의 차이점은 바로 주인공의 첫 대사다. 원작을 일부 옮기면서도 박 감독 나름의 변주를 꾀하고 있어서다. 드라마에는 영어 원문에는 없는 ‘저주받았다’(cursed)라는 표현이 들어갔다. 자신의 양가적인 정체성에 대해 다소 유보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으로 느껴지는 소설의 문장보다는 다소 직설적이다. 경계인의 딜레마를 좀더 강렬하게 표현함으로써 시리즈의 분위기를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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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베트남전쟁을 배경으로 북베트남과 남베트남 사이에서 이중간첩으로 활약했던 이름 없는 화자의 독백으로 이뤄져 있다. 분량은 좀 있지만 속도감 있는 전개와 깔끔한 번역으로 국내 독자들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작가의 데뷔작인 동시에 2016년 퓰리처상 수상작으로 미국 문단에서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킨 바 있다.

한국어로 처음 옮겨진 것은 2018년이고 지난해 3월 개정판이 나왔다. 일부 세계문학에 관심이 많은 독자나 영문학자들 사이에서 좋은 평판을 얻다가 지난해 6월 박 감독이 이 작품을 드라마화한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교보문고의 판매 부수 신장세가 무려 186%나 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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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에 답하는 박찬욱 감독
질문에 답하는 박찬욱 감독 박찬욱 감독이 18일 서울 강남구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열린 미국 HBO 시리즈 ‘동조자’ 시사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드라마에서는 기하학적인 미장센, 감각적인 색감 등 박 감독 특유의 영화미학을 찾는 재미가 쏠쏠하다. 전화기 다이얼 돌아가는 장면이 자동차 바퀴가 굴러가는 장면으로 바뀌는 것 등이다. 이른바 ‘폭력 미학’으로 명명되곤 하는 박 감독의 영화적 연출도 돋보인다. 드라마는 초장부터 극장 무대 위에서 한 여성 밀정을 고문하는 장면을 보여 준다. 그녀가 삼킨 문서를 찾아내기 위해 대변을 뒤진다는 설정이 있는데 같은 장면에서 언급되는 열대 과일 ‘두리안’의 후각적 감각과도 연결되며 영상의 그로테스크함을 더한다.

박 감독은 18일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열린 시사회에서 “보통 두 관점을 모두 볼 수 있다는 것은 축복처럼 생각되지만 실제로는 어느 쪽에도 설 수 없음을 의미한다. 그 양편이 극단적으로 투쟁하고 있을 때 이런 능력은 오히려 저주가 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부조리한 상황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코미디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이 원작에서 나아간 지점”이라며 “한국인으로서 이 작품과는 어느 정도의 거리가 있고 덕분에 객관성을 잃어버리는 우를 범하지 않을 수 있었다”고 했다.
오경진 기자
2024-04-19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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