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만 떠나는 여행 | 스웨덴] 북극 얼음호텔에서의 ‘쿨’한 체험

[둘만 떠나는 여행 | 스웨덴] 북극 얼음호텔에서의 ‘쿨’한 체험

입력 2010-11-07 00:00
업데이트 2010-11-07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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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키루나 유카스야르비 아이스 호텔

무더운 여름 날 얼음호텔에서 하룻밤을 지낸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 그것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얼음벽이 둘러싸인 얼음침대에서. 얼음침대는 과연 추울까? 더울까?

오로라를 보겠다고 북극의 하늘을 배회하던 우리는 노르웨이 나르빅에서 기차를 타고 얼음호텔이 있다는 키루나로 향했다. 기차는 설경과 호수가 어우러진 북극 산악지방을 느리게 달려갔다. 눈 덮인 설경, 깊은 협곡, 아슬아슬한 천길 낭떠러지… 기차는 눈과 얼음으로 장관을 이루고 있는 북극의 산악지방을 슬금슬금 기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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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루나는 북극에서 불과 125마일 떨어진 스웨덴 최북단에 위치한 인구 2만6천 명의 작은 도시다. 그러나 면적은 스위스 절반에 해당할 만큼 넓다. 이곳은 오로라도 자주 출몰하는 지역이다. 얼음호텔에서 허니문을 보내며 오로라를 관측할 수 있는 행운을 갖는다면 얼마나 환상적이겠는가?

북극의 낮은 짧다. 기차역에서 내린 우리는 어두워진 거리를 걸어서 그리 멀지않은 곳에 위치한 ‘유스호스텔 키루나’를 찾아갔다. 호스텔에 도착하니 문이 잠겨 있었다.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인기척이 없었다. 마침 바로 옆에 중국요리점이 있어 우리는 허기진 배를 채우고 숙소를 찾기로 했다.

중국집에는 우리와 같은 피부색을 가진 40대의 동양인이 웃으며 반겨주었다. 마이클 장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중국인도 우리를 보자 아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주문을 하면서 그에게 호스텔 문이 잠겨 있다고 했더니, 저녁 6시 이후에는 주인이 퇴근을 한다고 하면서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 그는 30분 후면 주인이 올 거라고 말하며 활짝 웃었다. 식당에 손님은 우리 둘뿐이어서 그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는 원래 무역상사 주재원으로 스웨덴에서 일을 하다가 이곳의 자연환경에 반해 눌러앉게 되었다고 했다. 내가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칭찬 했더니 “용기 있는 사람은 당신들이예요. 중년을 훌쩍 넘은 나이에 단 둘이서 배낭을 메고 세계일주를 하는 사람들은 그리 흔치않거든요”라며 되레 우리를 치켜세웠다.

식사를 거의 마칠 무렵 콧수염을 길게 기른 호스텔 주인이 비시시 웃으며 나타났다. 그는 호스텔의 문을 열고 방을 안내해 주며, 어디서 왔느냐는 둥, 왜 그리 늦었냐는 둥, 마누라가 예쁘다는 둥 갖은 수다를 떨었다. 수다쟁이 주인은 룸 키와 현관문의 암호를 알려준 다음 잘 자라고 하면서 다시 자기 집으로 차를 몰고 가버렸다. 돈을 버는 것이 전부가 아닌 자기의 시간과 생활을 고수하는 여유가 멋지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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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텔에 짐을 풀어놓고 밖으로 나왔다. 아내는 춥기도 하고 긴 여행의 피로에 지쳐 일찍 잠을 자겠다고 했다. 나는 한동안 하늘을 쳐다보다가 홀로 키루나의 조용한 시가지를 무작정 걸었다. 오로라가 출현을 할 가능성도 적지만 그냥 서 있기에는 너무 추웠기 때문이다. 키루나에서 오로라를 보겠다고 일주일 동안이나 머물다가 끝내 보지 못하고 더 북쪽인 트럼소로 간다는 일본인 부부를 생각하며 나는 피식 웃었다.

인적이 드문 키루나의 거리는 얼음처럼 차가웠다. 자정까지 거리를 배회했지만 상가는 모두 문을 닫았고 단 한 사람도 만날 수 없었다. 깊어가는 키루나의 밤거리. 점점 추워지는 밤공기에 탱자처럼 오그라든 나는 숙소로 돌아왔다.

얼음호텔에서 ‘쿨’한 하룻밤…

다음날 아침 우리는 버스를 타고 얼음호텔이 있는 ‘유카스야르비(Jukkasjarvi)’로 향했다. 눈의 나라 스웨덴 북구 지방 라플란드(Lapland)의 작은 마을인 유카스야르비는 ‘만남의 장소’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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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저기 이글루가 보여요!”

하얀 눈이 덮인 넓은 들판에는 아치형의 대형 이글루들이 환상의 성처럼 늘어서 있었다. 아이스 호텔이다. 온통 눈으로 덮인 얼음호텔은 세계에서 가장 큰 이글루다.

유카스야르비에 아이스 호텔(www.icehotel.com)이 생기게 된 것은 199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시스 호텔은 한 조각가가 얼어붙은 톤 강의 얼음 위에 이글루를 지었고, 이곳을 방문했던 어떤 부부가 그 이글루에서 순록의 털을 깔고 하룻밤을 자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영하 5C의 이글루에서 얼어 죽지 않을까 하고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다음날 아침 두 부부는 멀쩡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들은 이글루의 이색체험에 흠뻑 젖어 있었다.

아이스 호텔은 이제 하나의 거대한 기업이자 스웨덴의 관광명소가 되었다. 해마다 10월이 되면 세계 각지에서 내로라하는 건축가와 조각가, 예술가들이 이곳으로 몰려들기 시작한다. 그해 투숙을 할 여행객들을 맞이할 아이스 호텔을 짓기 위해서다. 그래서인지 아이스 호텔은 이글루 하나하나가 모두 예술품이다.

아이스 호텔은 매년 3월 인근에 흘러가는 톤 강(Torne River)에서 트랙터로 얼음을 채취하여 2톤 크기의 얼음 블록을 냉동창고에서 저장한 뒤, 그해 지을 이글루의 건축재로 사용한다. 톤 강은 수정같이 투명한 얼음이 언다. 거기에다가 북극이 가까운 이 지역은 겨울이면 엄청난 눈이 내린다. 톤 강에서 건져낸 4천 톤의 얼음과 인근에 내린 3만 톤의 눈만을 이용하여 세계적인 예술가, 건축가들이 아이스 호텔을 짓는다.

예술적인 감각을 살려 건축된 호텔에는 얼음교회, 영화관, 미술관, 아이스 바, 레스토랑을 갖추고 있다. 아이스 바에서는 수정 같은 얼음 잔에 칵테일을 즐길 수 있다. 얼음으로 만든 안락의자에 앉아 다정한 연인과 칵테일을 즐기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몽환적이다. 객실마다 얼음으로 만든 침대 위에는 순록의 털가죽으로 만든 시트가 깔려 있다. 침낭 속으로 들어가면 영하 4도에서 9도 사이의 추위도 전혀 춥지가 않다는 것. 영하 30~ 40도의 살인적인 외부기온에 비하면 오히려 안락한 느낌을 줄 정도이다.

“도대체 이 추운 얼음 방에서 하룻밤을 자는 데는 얼마나 될까요?”

“응? 어디 보자. 방에 따라 다르지만 하룻밤에 4~5백 달러 정도 되는 군.”

“이 냉방에서 자는 데 하룻밤에 5백 달러라니”

아내는 춥기도 하고 우리 같은 배낭여행자들이 거액의 숙박료를 지불하고 머물 처지도 아니라고 하면서 그만 돌아가자고 한다. 얼음호텔을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젊은 층들이다. 이곳에서는 결혼식도 종종 올리는데, 디럭스 스위트룸은 하룻밤에 약 1천 달러에 달한다.

“금혼식 기념으로 개썰매를 타고 와 저 디럭스 룸에 재워줄까?”

“에고고, 정말 얼어 죽게요?”

아이스 호텔 투어는 예약이 필수이다. 2박 3일 일정은 과히 환상적이다. 공항에 내리면 개썰매가 대기를 하고 있다. 개썰매를 타고 이글루에 도착하면, 두툼한 스노모빌 슈트에 털모자와 부츠가 지급되어 추위에 대비 완전무장을 한다. 사람들은 스릴 넘치는 스노모빌 사파리(Snowmobile Safari)를 즐기거나, 허스키 개썰매를 타고 야생의 설원을 누비기도 한다. 그러나 이렇게 멋진 아시스 호텔도 봄이 오면 녹아서 사라지고 만다. 4월부터 녹기 시작한 얼음은 5월이면 자취를 감춘다. 인생은 얼음성과 같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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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엽서를 몇 장 사들고 이글루에서 나와 키루나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데 빨간색 왜건이 오고 있었다. 무턱대고 손을 들었더니 한참을 지나쳤던 자동차가 다시 돌아왔다. 마음씨 좋아 보이는 노인이 고개를 내밀며 싱긋 웃더니 타라고 손짓을 했다. 이곳은 버스가 더디게 오는 지역이라 우리는 노인의 차를 탔다. 노인은 거의 영어를 하지 못했지만 무언가를 우리들에게 알려주려고 노력했다. 호수가 나오면 호수의 이름을 알려주고, 키루나 엘코아베 광산을 지날 때에는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였다. 세계에서 가장 큰 광산이라는 뜻이다.

노인은 키루나 다운타운에 우리를 내려주었다. 아내가 감사의 표시로 한국 전통 무늬가 새겨진 열쇠고리 하나를 선물로 주었더니 원더풀을 연발했다. 마음이 따뜻한 노인! 우리는 손을 흔들며 멀어져가는 노인의 왜건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갑자기 발바닥이 아파왔다. 키루나에 도착해서부터 발바닥에 물집이 생겨 통증이 심했다. 하도 많이 걸어 신발이 다 해져 물이 샌 탓에 물집이 생긴 것이다. 우리는 패스트푸드점에서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신발가게로 갔다. 아내의 신발도 다 해지고 닳아 물이 새어들고 있었다. 마침 아주 가볍고 편한 신발이 있었다. 가격을 물어보니 한 켤레에 8만 원 정도했다. 아내와 나는 살까말까 몇 번을 망설이다가 결국 사기로 했다.

배낭여행자에게 신발은 가장 중요하다. 새로 산 신발을 신고 아내와 나는 마치 어린아이들처럼 거리를 걸으며 웃었다. 비록 키루나에서 오로라를 보지 못하고, 아이스 호텔에서 잠을 자지는 못했지만, 새 신발을 신고 우리는 마치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우리는 키루나를 미련 없이 떠나기로 했다. 스톡홀름행 기차는 6시 51분에 있었다. 호스텔에서 배낭을 챙겨들고 우리는 키루나 역으로 걸어갔다.

글·사진_ 최오균 오지여행가, 《사랑할 때 떠나라》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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