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솜씨] 조각보

[솜씨] 조각보

입력 2010-11-14 00:00
업데이트 2010-11-14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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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난의 손가락 끝에 태어나는 ‘아름다움’

마을로 들어서는 길섶에 용케 봄날 나물꾼들 눈을 피한 취나물에 꽃이 폈습니다. 흰 취꽃 옆에 마타리도 노란 꽃대궁을 쑤욱 밀어 올려 피고 있습니다. 백로가 코앞이라도 도무지 꺾일 기세를 보이지 않던 기세 등등 하던 여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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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입니다. 나락은 말할 것도 없이 잘 여물어 가고 노상 고추를 따다 보니 얼굴까지 잘 익는다고 할매들은 우스갯소리를 합니다. 시골 살아도 마음으로야 농사일이 아무나 할 수 없는 힘든 일임을 백 번 안다 쳐도, 몸으로는 잘 모르는 내가 봐도 땡볕 아래 고추 따는 일은 보통 일이 아닙니다. 할매들은 빈터만 있으면 토란대나 고추 말릴 궁리를 합니다. 겉으로 표는 안 내도 공터만 보면 내야 매매 빨아 놓은 광목에 감물 치대 쫙 펼치고 싶은 마음 굴뚝 같습니다. 햇볕을 받아 감물 속에 들어 있는 탄닌이 단감 속살 같은 색이 나오는 감염색을 한참 할 때는 내 집 마당의 긴 빨랫줄이 다 차 남의 집 빨랫줄만 봐도 탐을 냈습니다. 가을이면 마당에 놀고 있는 짱짱한 볕이 아까워 힘에 부치고 물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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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젯껏 바느질을 해도 손가락이 패여 피멍이 들었다간 한 이틀 쉬면 저절로 아물곤 했습니다. 수없이 바늘귀에 찔려도 그르려니 했던 게 탈이 났습니다. 두꺼운 옛날 무명 가장자리를 구두수선공이 구두 깊듯 한 땀 한 땀 빼올려 바느질했던 게 화근이 된 모양입니다. 손톱 옆이 부풀어 올라 생손앓이 하듯 합니다. 상처투성이의 손이 말해 주고 있습니다. 사고로 다쳐 꿰멘 자리 거기다가 마당일까지 맨손으로 일합니다. 살집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힘줄이 솟아 있는 딱딱한 손, 골무 없이 조각보를 하다보니 바늘 잡는 손가락은 늘 같은 자리가 패입니다. 헤진 살 사이로 한 번씩 바늘귀가 쑥 들어갈 때는 눈앞이 노래집니다. 패이고 찢어지고 아물기를 반복하면서 손가락은 끝없는 수난을 당합니다. 겉으로 보이는 거친 내 손은 내가 만든 조각보처럼 아름답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일반적 기준으로 단순한 아름다움으로 본다면 선뜻 손 내밀기가 쉽지 않습니다.

퉁퉁 부어 덧난 손가락을 보며 한편으로는 ‘명색이 조각보를 십 년 이상 해온 손가락이 이쯤 되야지’ 하며 진짜 바느질장이 손 같다는 엉뚱한 생각도 해봅니다. 살아 있다는 건 이런 사소한 것에서부터 끊임없이 무언가를 견뎌내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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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 년이 넘도록 글로 인연을 맺어오고 있던 지인이 조각보 사진을 찍으러 왔습니다. 그는 늘 조각보의 뒤편(겹보의 앞면만 마무리 된 상태)이 궁금했다고 합니다. 마침 물들인 옛날 무명 자투리로 보자기를 만들고 남은 끝부분의 자잘한 베 쪼가리들로 조각보를 만들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자투리라곤 하지만 내 엄지 손톱만한 것에서부터 커봐야 서너 살 아이 손바닥만 합니다. 그러다보니 매듭에서부터 시접을 가름솔로 하고 다시 홈질로 모양을 내 꿰맨 자리까지 실밥을 정리해도 말쑥한 앞판과는 딴판입니다.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있는 곁에서 어정쩡하게 서 조각보의 뒤편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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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웃고 떠들며 잘난 체해도 속은 저 조각보의 뒤편 같은 게 우리의 삶은 아닐까. 때때로 무수한 매듭과 얽히고설켜 있는 복잡한 조각보의 뒤편 같은 속마음을 감추고 싶은 때도 있지 않는가. 드러내고 싶지 않은 슬픔과 상처같은 뒤판. 그러나 다른 천을 덧대어 붙여 뒤편을 마무리하고 나면 멀끔해져 여간해서 속이 보이지 않습니다. 속내를 알 수 없는 건 조각보만은 아닐 겁니다.

고향에서 보내온 자투리 천 속에 섞여 온 삼베조각입니다. 언뜻봐도 고운 축에 드는 아홉 새는 될 성 싶습니다. 적삼은 아닌 듯하고 등거리로 만들어 입다 그것마져 해어졌는지 뜯어 놨습니다. 앞판 한쪽입니다. 군데군데 삭아 처진 곳을 삼베 자투리로 덧대어 재봉틀로 박음질을 해놓았습니다. 혹시라도 조각보에 쓰임새가 있을까 싶어 같이 보낸 모양입니다. 그 마음 다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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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안동지방에서 나는 안동포. 그중에 임하면 금소리는 모래와 찰흙으로 된 땅이라 삼이 튼튼하고 곧게 자라는 곳으로 손꼽힙니다. 지금도 이끼 낀 기다란 돌담을 끼고 덩실한 기와집이 있는 금소리. 안마당이나 그 긴 골목에서 베를 맵니다. 왕겨로 뭉근하게 피워놓은 뱃불(베를 맬 때 풀이 잘 마르도록 하기 위해 지피는 불) 위에서 소금기가 물기를 빨아들여 섬유가 부러지는 것을 막기 위해 된장 넣은 좁쌀풀을 먹여 베를 맴니다.

잔말 많은 시어머니

이내 잠을 또 깨우네

오륙칠월 짜른 밤에 단잠을랑 다 못자고

이 삼 저 삼 삼을 적에

두 무릎 다 썩네

-<삼 삼기 노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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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세월을 모르고 산 나는 노래만 들어도 십리 밖으로 달아나겠습니다. 삼씨 뿌리고 유월 하순에서 칠월 초순이면 삼을 베여 쪄서 익히는 삼굿(삼을 찌는 가마)을 거칩니다. 무르팍에 굳은살이 박히고 피멍이 들도록 삼실을 만들어 짜내는 삼베입니다. 생각만으로도 손사래가 쳐집니다. 그리 힘들게 짠 베다 보니 쪼가리 하나 허투루 버릴 수가 없었겠습니다.

내게 삼베 자투리를 보내온 이는 친정이 임하면 금소리입니다. 보내온 낡은 삼베 등거리는 그이의 친정엄마 것인 듯합니다. 옛날에야 큰집을 지키고 사시자면 살림솜씨 베 짜는 솜씨 바느질 솜씨가 맴짜셨겠지만 이제는 연세도 높아 돋보기 끼고 해진 곳을 대충 틀로 박아 행주로 쓸 요량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결국 행주로 쓰기에도 아까워 쓸 만한 데 없을까 싶어 다른 옷가지 틈에 끼워 놓았던 것은 아닌지. 매끈하며 올이 곱고 가을 들판 같은 빛깔이 아름다운 삼베. 세월 속에서 해지고 삭아 상처투성이가 되었습니다. 저 삭아내린 곳을 거칠게 틀로 박아 놓은 삼베 천. 나더러 치열하게 살고 있느냐고 다그쳐 묻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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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베 한 필 짜는 데 들인 공만으로도 자투리 하나 버릴 수 없습니다. 내 솜씨로는 도저히 이어붙일 수 없는 자투리, 먼옷(수의) 만들 때에 베개 속에 솜옷 대신 넣는다지만 그것도 아닌 나는 조각보에조차 쓸 수 없는 긴 쪼가리들, 마땅이 쓸 곳 없어도 실 감듯 감아 버들고리짝 한 켠 다른 자투리 통에 넣어둡니다.

내 조각보는 나 혼자 만든 것이 아닙니다. 흩어져 있던 자투리들을 기꺼이 모아주고 고이 간직하고 있는 백 년이 넘은 옛 명주 자투리들을 선뜻 내주고 주저앉지 않게 힘을 주는 사람들. 그 마음 알기에 해진 쪼가리 하나 버리지 못합니다. 바닥이 거칠면 거친대로 고우면 고운대로 해를 넘겨가며 자투리가 모이는 대로 이어 갑니다. 겹보와 달리 싸매어 바느질한 쌈솔이기에 앞뒤 구분키 힘든 홀보입니다. 빛을 받아 속속들이 제 모습 다 드러내 보여야 더 아름다운 바람을 부르는 보자기. 저 안동포로 만든 조각보에는 수십 명이 넘는 사람들이 짠 삼베 조각들이 들어 있습니다. 손가락에 피멍 들도록 한 땀 한 땀 뜨면서 흘린 땀 속에 든 내 눈물과 같이 안동포 조각보가 됩니다.

“도를 닦는 것은 마음을 모으는 거여. 별거 아녀…. 무엇이든지 한 가지 가지고 끝까지 공부하는 겨” 수월선사 법문이 바람처럼 지나갑니다.

글_ 김명숙 조각보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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