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무문’·’제심합력’…정국 고비마다 ‘휘호정치’

‘대도무문’·’제심합력’…정국 고비마다 ‘휘호정치’

입력 2015-11-22 15:03
업데이트 2015-11-22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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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철학·정국운영구상 압축표현해 정치권에 화두 던져 방한 빌 클린턴에 ‘대도무문’ 붓글씨로 써 직접 선물’제2의 건국’, ‘역사 바로세우기’, ‘유시유종’, ‘정자정야’

김영삼 전 대통령은 집권 이후 처음 맞은 해인 1994년 아침 신년 휘호로 ‘제2의 건국’을 제시했다.

‘제2의 건국’은 집권 첫 해 90%에 육박하는 국민적 지지도를 바탕으로 공직자 재산 공개와 금융실명제 실시 등 ‘상전벽해’와 같은 개혁 조치를 통해 나라의 뼈대와 기강을 근본부터 바꾸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담고 있었다.

이처럼 김 전 대통령은 집권시절인 문민정부 5년 내내는 물론 그 이후에도 매년 정초에 직접 붓으로 적은 ‘신년 휘호’를 선보여 자신의 정치철학을 강조하고 국정운영 구상을 밝혔다. 이른바 ‘휘호(揮毫) 정치’를 펼친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이 신년휘호로 가장 많이 사용한 말은 YS의 전유물처럼 인식되는 ‘대도무문(大道無門)’이다.

그는 집권 중반기인 1995년에 이어 대통령 직에서 물러난지 6년이 지난 2004년에도 이를 제시했다.

대도무문은 유혹에 흔들리거나 잔재주를 부리지 않고 바른길을 걷겠다는 뜻이다.

1995년 당시는 여권의 2인자였던 김종필 당시 민주자유당 대표와 갈등을 빚던 복잡했던 정치적 상황을 잘 대변하는 사자성어라는 평가가 뒤따랐다. 김종필 당시 대표는 결국 그해 1월19일 대표직에서 물러나면서 탈당을 선언하고 자유민주연합을 창당, 김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동거’를 청산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이후에도 정치적 고비 때마다 ‘대도무문’이란 사자성어를 즐겨 써 그의 트레이드 마크로 삼았다.

1993년 7월 방한안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에게 선물할 휘호로 ‘대도무문’을 직접 써 전달하기도 했다.

2004년에도 김 전 대통령은 세배객을 맞는 상도동 자택의 응접실에 ‘대도무문’을 큼지막하게 써서 내걸고 “꾀를 내 소도(小道)로 가지 말고 대로(大路)로 당당히 가야한다”고 강조했다.

1996년에는 ‘역사 바로 세우기’를 신년 휘호로 정했다. 재임 기간 처음 채택된 한글 휘호였다.

당시 5·18 특별법 제정과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사법 처리에 대한 의지를 담았다는 분석이 뒤따랐다.

사실상 임기 마지막 해였던 지난 1997년에는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만큼 유종의 미를 거두겠다’는 취지로 ‘유시유종(有始有終)’을 제시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이후인 1998년 신년에는 ‘제심합력(齊心合力)’을 내세웠다. 모든 국민이 힘을 합쳐 외환 위기를 극복하자는 염원을 담았다는 해석을 낳았다.

김 전 대통령은 신년 뿐만아니라 주요 계기 때마다 휘호로써 자신의 구상을 ‘웅변’했다.

‘군정종식’을 내세우고 대통령에 당선됐던 김 전 대통령은 군대내 파벌인 ‘하나회’를 척결하면서 맞은 1993년 10월1일 국군의 날에는 군에 본업인 국방에 정진하라는 뜻에서 ‘조국수호’라는 휘호를 써 전달했다.

휘호 정치는 퇴임 이후에도 계속 됐다.

2002년에는 신년휘호로 ‘정자정야(政者正也·정치는 바르게 해야 한다는 의미)’를 제시했고, 2005년엔 ‘하늘을 공경하고, 사람을 사랑한다’는 뜻의 경천애인(敬天愛人)을 정했으며 2008년엔 ‘극세척도(克世拓道.세상을 극복해 새 길을 개척해 나간다)’를 내세워 자신의 정치적 소신을 강조했다.

2012년에는 믿음이 없으면 나라도 개인도 설 수 없다는 뜻에서 ‘무신불립(無信不立.신의가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을 새해 휘호로 내놓고 정치권과 국민에 신의를 강조하기도 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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