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전 대통령이 1993년 2월 25일 국회의사당에서 제14대 대통령 취임식을 마친 뒤 차량에 탑승해 청와대로 이동하는 도중 광화문 인근에서 거리의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https://img.seoul.co.kr/img/upload/2015/11/22/SSI_20151122170612_O2.jpg)
연합뉴스
![김영삼 전 대통령이 1993년 2월 25일 국회의사당에서 제14대 대통령 취임식을 마친 뒤 차량에 탑승해 청와대로 이동하는 도중 광화문 인근에서 거리의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https://img.seoul.co.kr//img/upload/2015/11/22/SSI_20151122170612.jpg)
김영삼 전 대통령이 1993년 2월 25일 국회의사당에서 제14대 대통령 취임식을 마친 뒤 차량에 탑승해 청와대로 이동하는 도중 광화문 인근에서 거리의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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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김 전 대통령의 주요 어록.
●한국에는 통치가 있을 뿐이고, 정치가 없다. 정치가 없는 곳에 민주주의는 없다.
(1973년 9월,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김대중 납치사건 진상 규명을 촉구하며)
●대도무문(大道無門, 정직하게 나가면 문이 열린다)
(1979년 5월, 신민당 총재 재선 직후)
●머리는 빌릴 수 있어도 몸은 빌릴 수 없다.
(평소 건강을 강조하면서)
●이 정권(박정희 정권)은 필연코 머지 않아서 반드시 쓰러질 것이다. 쓰러지는 방법도 무참히 쓰러질 것이다.
(1979년 8월, YH무역 여성 노동자에 대한 강제진압 과정에서 여성 노동장 1명이 추락하는 사건이 발생한 뒤 ‘YH사건 백서’를 발표하면서. 두 달 뒤 10·26 사건이 발생했다.)
●순교의 언덕, 절두산을 바라보는 이 국회의사당에서 나의 목을 자른 공화당 정권의 폭거는 저 절두산이 준 역사의 의미를 부여할 것이다.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오고야 만다. (1979년 10월, 국회의원에서 제명되자)
●나를 해외로 보낼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시체로 만든 뒤에 해외로 부치면 된다.
(1983년 5월, 가택연금 중 민주화 요구 성명을 발표하고 무기한 단식에 돌입했을 때)
●대통령 후보 지명은 축제 속에 이뤄져야 한다. 박종철군 사건으로 온 국민이 우울한 지금, 민정당의 6·10 전당대회에서 하는 대통령 지명대회는 초상집에서 춤을 추는 격이다.
(1987년 6월, 국회의사당 단식농성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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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명이 뭐꼬, 1000만명은 해야지.…누가 세리(헤아려) 보나?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 투쟁을 벌이던 중,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김영삼(YS) 전 대통령에게 ‘100만인 서명운동’을 제안하자, YS가 역제안. DJ가 “1000만명을 어떻게 채우느냐”고 하자 ‘1000만명’으로 최종 결정됐다.)
●노태우씨는 전두환 대통령과 같은 군인 출신으로서 12·12 사태를 일으켰고, 일선 군부대를 빼내 쿠데타를 한 사람이다. 쿠데타 한 사람이 대권을 잡는 것은 군정의 연장이다.
(1987년 대선 후보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선거혁명을 통한 민주화가 내 지론이었으나, 이 정권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어젯밤과 오늘 내내 생각한 끝에 이 정권을 완전히 타도할 것을 결심했다. 나는 박정희 정권을 타도시킨 사람이다. 기필코 전두환 노태우 정권을 타도할 것이다.
(1987년 대통령 선거 직후 기자회견에서)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로 들어가야 한다.
(1990년 1월, 3당 합당을 하면서)
●신한국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인내와 시간이 필요하다. 눈물과 땀이 필요하다. 고통이 따른다. 우리 다 함께 고통을 분담하자.
(1993년 대통령 취임사에서)
●우리가 먼저 달라져야 한다. 우리가 먼저 깨끗해져야 한다. 우리가 먼저 고통을 기꺼이 감당해야 한다. 나는 대통령인 나 자신이 솔선해야 한다는 각오 아래 오늘 나의 재산을 공개하는 바이다. 명예가 아닌 부를 택하려면 공직을 떠나라.
(1993년 2월 27일 첫 국무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
●추석 때 떡값은 물론 찻값이라도 받지 않을 것이다.
(1993년 청와대 기자간담회에서 정치자금을 받지 않을 것임을 강조하면서)
●깜짝 놀랬제?
(1993년 3월 9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전날 예고없이 김진영 육군참모총장 경질을 시작으로 ‘하나회’ 숙청을 시작하면서.)
●새 정부에 있어 국가기강 확립의 대도(大道)는 하나도 윗물 맑기요, 둘도 윗물 맑기다.
(1993년 국가기강확립 보고회의에서 고위공직자의 청렴성을 강조하면서)
●우째 이런 일이….
(1993년 최형우 민자당 사무총장 아들의 대입 부정과 관련해서)
●토지와 건물 등 부동산을 갖고 있는 것이 고통이 되도록 하겠다.
(1993년 신경제계획 민간위원과의 조찬에서 부동산실명제를 소개하면서)
●요즈음 개혁을 하다 보니 환부 하나를 찾아내 도려내면 또 나오고 또 나오고 한다. 32년의 권위주의 시대가 만든 ‘한국병’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실감한다.
(1993년 주요 인사 접견에서)
●이 시간 이후 모든 금융거래는 실명으로만 이루어진다.
(1993년 8월 12일, 금융실명제 실시를 발표하면서)
●개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 사랑을 받지만, 또 한편으로는 달리는 기차를 보고도 짖는다. 그러나 개가 짖는다고 뒤를 돌아볼 여유가 없다.
(1994년 ‘개의 해’를 맞아. 하나회 척결에 대한 반발에 대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지지율이 90%를 넘을 때는 너무 높아서 어지럽고 스트레스를 받았다. 민주국가에서는 반대도 있을 것이니, 이제야 정상으로 돌아온 것이다.
(1994년 대통령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국민 여러분의 참담한 심경과 허탈감, 정부에 대한 질책과 비판의 소리를 들으면서 대통령으로서 부덕함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관련 대국민 특별담화에서)
●이번 기회에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
(1995년 11월, 한·중 정상회담 뒤 기자회견에서 당시 일본 총무상이 “식민지 시절 좋은 일도 있었다”고 한 망언을 겨냥해 일본을 비판하면서)
●아들의 허물은 곧 아비의 허물이라 여기고 있다.
(1997년 ‘소통령’으로 불리던 아들 현철씨가 구속되자 대국민사과를 하면서)
●영광의 시간은 짧았지만, 고통과 고뇌의 시간은 길었다.
(1998년 2월 퇴임사에서)
●박정희 정권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아직 남았으며 결코 미화될 때가 아니다.
(1999년 5월 시국성명에서)
●노벨상의 가치가 땅에 떨어졌다.
(2000년 10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소식을 듣고)
●김대중 대통령은 불행한 대통령이 될 것이다.
(2002년 김대중 대통령의 아들 비리의혹에 대해)
●사필귀정.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의 가결에 대해)
●하나회가 그대로 있었다면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통령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2008년 군내 사조직 ‘하나회’ 숙청을 언급하면서)
●그렇게 (화해했다고) 봐도 좋다. 이제 그럴 때가 온 것도 아니냐.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주일 전 문병 뒤 ‘화해한 것으로 봐도 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아쉽고도 안타깝다. 나라의 큰 거목이 쓰러졌다고 생각한다.
(2009년 8월,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소식에)
●사자가 토끼를 한 마리 잡아도 최선을 다한다. 사자가 간단히 하면 토끼를 못먹는다. (2011년 한나라당 나경원 서울시장 후보를 면담한 자리에서)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