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전 대통령 어록 모음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김영삼 전 대통령 어록 모음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입력 2015-11-23 11:39
업데이트 2015-11-23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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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전 대통령이 1993년 2월 25일 국회의사당에서 제14대 대통령 취임식을 마친 뒤 차량에 탑승해 청와대로 이동하는 도중 광화문 인근에서 거리의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김영삼 전 대통령이 1993년 2월 25일 국회의사당에서 제14대 대통령 취임식을 마친 뒤 차량에 탑승해 청와대로 이동하는 도중 광화문 인근에서 거리의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김영삼 전 대통령이 22일 서거했다. 김 전 대통령은 독재정권에 저항하던 야당 정치인 시절부터 대통령 퇴임 이후까지 특유의 직설적인 어투로 숱한 어록을 남겼다.

다음은 김 전 대통령의 주요 어록.
한국에는 통치가 있을 뿐이고, 정치가 없다. 정치가 없는 곳에 민주주의는 없다.
(1973년 9월,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김대중 납치사건 진상 규명을 촉구하며)
대도무문(大道無門, 정직하게 나가면 문이 열린다)
(1979년 5월, 신민당 총재 재선 직후)
머리는 빌릴 수 있어도 몸은 빌릴 수 없다.
(평소 건강을 강조하면서)
●이 정권(박정희 정권)은 필연코 머지 않아서 반드시 쓰러질 것이다. 쓰러지는 방법도 무참히 쓰러질 것이다.
(1979년 8월, YH무역 여성 노동자에 대한 강제진압 과정에서 여성 노동장 1명이 추락하는 사건이 발생한 뒤 ‘YH사건 백서’를 발표하면서. 두 달 뒤 10·26 사건이 발생했다.)
●순교의 언덕, 절두산을 바라보는 이 국회의사당에서 나의 목을 자른 공화당 정권의 폭거는 저 절두산이 준 역사의 의미를 부여할 것이다.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오고야 만다. (1979년 10월, 국회의원에서 제명되자)
●나를 해외로 보낼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시체로 만든 뒤에 해외로 부치면 된다.
(1983년 5월, 가택연금 중 민주화 요구 성명을 발표하고 무기한 단식에 돌입했을 때)
●대통령 후보 지명은 축제 속에 이뤄져야 한다. 박종철군 사건으로 온 국민이 우울한 지금, 민정당의 6·10 전당대회에서 하는 대통령 지명대회는 초상집에서 춤을 추는 격이다.
(1987년 6월, 국회의사당 단식농성 중)



●100만명이 뭐꼬, 1000만명은 해야지.…누가 세리(헤아려) 보나?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 투쟁을 벌이던 중,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김영삼(YS) 전 대통령에게 ‘100만인 서명운동’을 제안하자, YS가 역제안. DJ가 “1000만명을 어떻게 채우느냐”고 하자 ‘1000만명’으로 최종 결정됐다.)
●노태우씨는 전두환 대통령과 같은 군인 출신으로서 12·12 사태를 일으켰고, 일선 군부대를 빼내 쿠데타를 한 사람이다. 쿠데타 한 사람이 대권을 잡는 것은 군정의 연장이다.
(1987년 대선 후보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선거혁명을 통한 민주화가 내 지론이었으나, 이 정권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어젯밤과 오늘 내내 생각한 끝에 이 정권을 완전히 타도할 것을 결심했다. 나는 박정희 정권을 타도시킨 사람이다. 기필코 전두환 노태우 정권을 타도할 것이다.
(1987년 대통령 선거 직후 기자회견에서)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로 들어가야 한다.
(1990년 1월, 3당 합당을 하면서)
●신한국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인내와 시간이 필요하다. 눈물과 땀이 필요하다. 고통이 따른다. 우리 다 함께 고통을 분담하자.
(1993년 대통령 취임사에서)
●우리가 먼저 달라져야 한다. 우리가 먼저 깨끗해져야 한다. 우리가 먼저 고통을 기꺼이 감당해야 한다. 나는 대통령인 나 자신이 솔선해야 한다는 각오 아래 오늘 나의 재산을 공개하는 바이다. 명예가 아닌 부를 택하려면 공직을 떠나라.
(1993년 2월 27일 첫 국무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
●추석 때 떡값은 물론 찻값이라도 받지 않을 것이다.
(1993년 청와대 기자간담회에서 정치자금을 받지 않을 것임을 강조하면서)
●깜짝 놀랬제?
(1993년 3월 9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전날 예고없이 김진영 육군참모총장 경질을 시작으로 ‘하나회’ 숙청을 시작하면서.)

●새 정부에 있어 국가기강 확립의 대도(大道)는 하나도 윗물 맑기요, 둘도 윗물 맑기다.
(1993년 국가기강확립 보고회의에서 고위공직자의 청렴성을 강조하면서)
우째 이런 일이….
(1993년 최형우 민자당 사무총장 아들의 대입 부정과 관련해서)
●토지와 건물 등 부동산을 갖고 있는 것이 고통이 되도록 하겠다.
(1993년 신경제계획 민간위원과의 조찬에서 부동산실명제를 소개하면서)
●요즈음 개혁을 하다 보니 환부 하나를 찾아내 도려내면 또 나오고 또 나오고 한다. 32년의 권위주의 시대가 만든 ‘한국병’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실감한다.
(1993년 주요 인사 접견에서)
이 시간 이후 모든 금융거래는 실명으로만 이루어진다.
(1993년 8월 12일, 금융실명제 실시를 발표하면서)
●개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 사랑을 받지만, 또 한편으로는 달리는 기차를 보고도 짖는다. 그러나 개가 짖는다고 뒤를 돌아볼 여유가 없다.
(1994년 ‘개의 해’를 맞아. 하나회 척결에 대한 반발에 대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지지율이 90%를 넘을 때는 너무 높아서 어지럽고 스트레스를 받았다. 민주국가에서는 반대도 있을 것이니, 이제야 정상으로 돌아온 것이다.
(1994년 대통령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국민 여러분의 참담한 심경과 허탈감, 정부에 대한 질책과 비판의 소리를 들으면서 대통령으로서 부덕함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관련 대국민 특별담화에서)
●이번 기회에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
(1995년 11월, 한·중 정상회담 뒤 기자회견에서 당시 일본 총무상이 “식민지 시절 좋은 일도 있었다”고 한 망언을 겨냥해 일본을 비판하면서)
●아들의 허물은 곧 아비의 허물이라 여기고 있다.
(1997년 ‘소통령’으로 불리던 아들 현철씨가 구속되자 대국민사과를 하면서)
영광의 시간은 짧았지만, 고통과 고뇌의 시간은 길었다.
(1998년 2월 퇴임사에서)
●박정희 정권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아직 남았으며 결코 미화될 때가 아니다.
(1999년 5월 시국성명에서)
●노벨상의 가치가 땅에 떨어졌다.
(2000년 10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소식을 듣고)
●김대중 대통령은 불행한 대통령이 될 것이다.
(2002년 김대중 대통령의 아들 비리의혹에 대해)
●사필귀정.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의 가결에 대해)
●하나회가 그대로 있었다면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통령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2008년 군내 사조직 ‘하나회’ 숙청을 언급하면서)
●그렇게 (화해했다고) 봐도 좋다. 이제 그럴 때가 온 것도 아니냐.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주일 전 문병 뒤 ‘화해한 것으로 봐도 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아쉽고도 안타깝다. 나라의 큰 거목이 쓰러졌다고 생각한다.
(2009년 8월,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소식에)
●사자가 토끼를 한 마리 잡아도 최선을 다한다. 사자가 간단히 하면 토끼를 못먹는다. (2011년 한나라당 나경원 서울시장 후보를 면담한 자리에서)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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