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맹·북핵공조 총론 일치…견해차 있는 현안은 안 건드린 듯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첫날인 1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전화 협의를 진행함으로써 탄핵 국면에서 5개월간 있었던 사실상의 정상외교 공백에 마침표를 찍었다.새 정부 외교라인은 문 대통령의 임기 개시일이라는 상징성이 있는 이날 주변 4강(미중일러) 중 미국 정상과의 전화 통화를 최우선 순위로 배정함으로써 한미동맹 중시 기조를 보여줬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문제를 놓고 중국, 일본 정상과 통화하고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인 한국은 건너 뛰는 일이 반복되면서 ‘코리아 패싱’(Korea passing)이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그런 점에서 취임 첫날 이뤄진 한미 정상의 통화는 한미 외교채널의 정상화를 알리는 의미가 있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화협의의 내용 면에서 양측은 문 대통령의 취임을 트럼프 대통령이 축하하는 의미를 담은 첫 통화임을 감안, ‘구동존이’(求同存異, 공통점을 찾되 다른 점은 인정한 채 보류하는 것) 식 접근을 했다.
북핵 문제에서 긴밀히 협력하기로 하고, 굳건한 한미동맹을 확인하는 등 한미관계의 총론에는 이견이 없음을 두 정상은 확인했다. 그러면서도 북핵에서 압박과 대화 중 어느 쪽에 방점을 찍을 것인지, 주한미군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 비용은 누가 부담할 것인지 등 양측 사이에 이견이 있을 수 있는 문제들은 이번에 깊이 건드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양 정상은 관심을 모으는 첫 한미 정상회담을 조기에 개최하자는데 의견을 같이 하고 준비 차원에서 한국의 대미 특사, 미국의 자문단이 각각 상대국을 방문하는 구상을 교환하면서 정상회담 조기 개최 방안이 탄력을 받게 됐다.
이날 취임사에서 “필요하면 곧바로 워싱턴으로 날아가겠다”고 했던 문 대통령은 조기 정상회담에 대한 희망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직접 전하고 트럼프 대통령도 조기 정상회담을 희망한다고 밝혔다.
이로써 이르면 내달 중 문 대통령의 방미와 임기 중 첫번째 한미정상회담이 열릴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리게 됐다.
7월 7∼8일(이하 현지시간) 독일 함부르크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대면할 기회가 있지만, 다자회의 계기에 짧게 상견례하는 형식의 첫 한미정상회담은 현재의 엄중한 한반도 정세에 비춰볼 때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있다.
조기 정상회담의 관건은 외교장관을 비롯한 외교·안보 분야 각료의 인선과 대미 현안에 대한 정부의 입장 정리가 신속하게 이뤄질 수 있느냐로 보인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최대한도의 압박과 관여’라는 이름이 붙은 대북 정책의 얼개를 이미 마련했고, 기존 한미 합의를 뒤집어가며 사드 비용의 한국 부담을 요구했다. 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을 언급했다.
그런만큼 문 대통령은 트럼프의 정책과 요구에 대한 ‘답’을 가지고 정상회담을 해야 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조기 개최에는 성공했지만 대북 정책을 놓고 양 정상간의 선명한 입장차만 확인함으로써 ‘역대 최악의 한미 정상회담’ 중 하나로 꼽혔던 2001년 3월 김대중-조지 W. 부시 간 정상회담의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한다는 지적인 것이다.
문정인 연세대 명예 특임교수는 “우리가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하면 ‘푸대접’을 받을 수 있으니 회담 개최 자체를 서두를 필요는 없다”며 “다만 조기에 대미 특사를 파견하는 것은 생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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