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 화보문집 ‘김점선 그리다’ 펴낸 사진작가 김중만 씨
한여름에 겨울 코트를 입은 채 칫솔을 물고 거리를 걷던 사람, 아들의 결혼식에 고운 한복 대신 반바지와 티셔츠를 입고 하객석에 앉았던 사람, 대기업에서 자신의 그림을 사겠다며 1000만원을 깎아 달라고 하자 그날로 전시회에서 그림을 빼버린 사람, 소설가 박완서가 자신의 그림을 내내 거실 중앙에 걸어놓다 계단 옆으로 옮기자 씩씩대며 그림을 들고 돌아가버린 사람. 2년 전 난소암으로 세상을 떠난 ‘화단의 기인’ 김점선(1946~2009)이다.사진작가 김중만이 24일 “6년 전 합동으로 작업하고 전시회 가진 것 빼고는 작품을 같이 묶은 것은 처음이며 나에게는 영광”이라면서 “서로 다른 곳에서 진행한 작품이 비슷한 이미지를 품고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김점선 추모 작품집(왼쪽)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문학의문학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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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 년 동안 그를 ‘누나’라고 부르며 돈독한 우정을 나눴던 세계적인 사진작가 김중만(57)이 김점선 2주기를 맞아 자신의 사진과 김점선의 그림을 한데 묶은 추모 화보문집 ‘김점선 그리다’(문학의문학 펴냄)를 내놨다. 이해인 수녀, 정호승 시인, 윤후명 소설가 겸 화가, 가수 조영남, 정민 한양대 국문과 교수, 최인호 소설가 등 남아 있는 사람들, 그리고 김점선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세상을 뜬 고 박완서, 장영희 교수의 글을 함께 묶었다. 김점선의 미발표작 12점도 새로 발굴해 실었다. 책 제목은 화가로서 김점선의 정체성과 함께, 살아남아 그를 여전히 그리워하는 이들의 마음을 뜻한다.
24일 서울 태평로의 한 식당에서 만난 김중만은 “김점선 화백은 천재적인 재능에도 불구하고 다소 보수적인 국내 화단에서 이단아쯤으로 치부되며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면서 “결국 나중에는 재평가받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고 김점선 추모 작품집
책은 서로 다른 시공간에서 작업이 이뤄졌음에도 김중만과 김점선의 작품이 얼마나 절묘하게 스치듯 만나고, 서로 마주보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앙코르와트에 ‘김점선 미술교실’ 열어
김중만은 오는 27일 캄보디아로 떠난다. 앙코르와트 근처에 설립한 ‘김점선 미술교실’ 개교식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학교는 교육 혜택을 받지 못하는 캄보디아 어린이 600명이 공부할 수 있는 곳이자 그들 안에 숨겨진 미술 재능을 끌어낼 수 있는 공간이다.
김중만은 “세계문화유산 앙코르와트에서 보여지듯 예술적 재능이 탁월한 곳이며 그 자체로 너무나도 아름다운 곳”이라면서 “평생 한국을 떠나지 않았던 김 화백도 그처럼 아름다운 곳에 자신의 이름을 딴 미술학교가 세워진 것을 알면 껄껄거리며 좋아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점선 미술학교’는 김중만이 사재를 털었고, 김점선기념사업회, 플랜코리아, 플랜캄보디아 등이 힘을 더해 운영될 예정이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2011-06-25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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