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작위’에 의한 살인의 미필적 고의 인정 첫 판례
세월호 선장 이준석(70)씨에 대한 12일 대법원 판결은 혼자서 탈출한 행위가 승객들을 물에 빠뜨려 익사시키는 고의적 살인과 사실상 마찬가지라는 의미다.인명사고 때 구조조치 지휘자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이른바 ‘부작위’에 의한 살인의 미필적 고의를 인정한 첫 판례다. 여기에는 전원합의체에 참여한 대법관 13명 전부 동의했다.
퇴선방송을 지시하지 않은 이씨의 부작위는 이미 항소심에서 사실로 확정됐다. 상고심에서는 이씨의 이런 부작위를 살인행위와 동등하게 볼 수 있는지, 설령 그렇다 해도 이씨에게 살인의 고의가 있었는지가 쟁점이었다.
대법원은 우선 이씨가 선장으로서 포괄적·절대적 권한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탈출 말고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사실상 살인행위를 했다고 판단했다.
이씨가 선내에 대기하라고 안내해놓고서 세월호를 빠져나간 이후에도 아무런 구조조치를 하지 않은 결과 304명이 숨졌다. 조타실 내 간단한 장비만으로도 가능한 대피·퇴선명령을 내렸을 경우와 비교하면 부작위가 살인행위와 같은 결과를 가져왔다고 대법원은 판단했다.
대법원은 살인죄의 또다른 구성요건인 고의성도 인정했다. 내버려둘 경우 승객들이 익사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았고 이런 결과를 용인하는 ‘내심’도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미필적 고의를 대법원은 “선장 역할의 의식적이고 전면적인 포기”라고 표현했다.
대법원은 지금까지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를 인정하려면 실제 살해행위와 동등하게 여겨질 정도의 강한 위법성이 필요하다며 엄격히 판단해왔다.
인정된 경우는 살인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부작위가 대부분이다. 피해자를 감금해 탈진시킨 뒤 그대로 뒀다가 사망한 경우가 그 예다.
대법원은 “구조조치나 구조의무 위반이 문제된 사안에서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를 인정한 최초의 판결”이라며 “국민의 안전을 책임진 사람에게 높은 수준의 책임감을 요구했다는 의미가 있다”고 자평했다.
1등 항해사 강모(43)씨와 2등 항해사 김모(48)씨, 기관장 박모(55)씨는 살인 혐의가 인정되지 않았다. 세월호에서 절대적 위치에 있는 이씨와 달리 선장의 지휘에 따라 임무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씨와 달리 “승객들이 죽어도 어쩔 수 없다”는 속마음이 있었다고 보기도 어렵다는 게 대법원의 판단이다.
박보영·김소영·박상옥 대법관은 1·2등 항해사에게도 살인죄를 적용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이들 대법관은 1·2등 항해사에게 유사시 선장 직무를 대행할 책임이 있다는 점을 근거로 제시했다. 선장이 직무를 포기한 비정상적 상황이라면 대신 구조조치를 지휘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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