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베델 한국서 쓴 첫 기사는 돌팔매 놀이 ‘석전’ 소개

[단독]베델 한국서 쓴 첫 기사는 돌팔매 놀이 ‘석전’ 소개

오경진 기자
오경진 기자
입력 2018-08-16 22:24
업데이트 2018-11-07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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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 ‘경운궁 화재 보도’ 보름 전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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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니스트 토머스 베델(1872~1909·한국명 배설)이 ‘데일리 크로니클’의 특별 통신원으로 활약할 당시 한국에서 썼던 첫 번째 기사.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1872~1909·한국명 배설)이 ‘데일리 크로니클’의 특별 통신원으로 활약할 당시 한국에서 썼던 첫 번째 기사.
1904년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해 독립운동에 기여한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1872~1909·한국명 배설)이 ‘데일리 크로니클’의 특별 통신원으로 일할 당시 한국에서 썼던 첫 번째 기사가 새로 확인됐다. 그동안 역사학계에서는 1904년 4월 16일자 ‘경운궁 화재 사건’으로 알고 있었지만 이보다 보름 앞선 4월 1일자 한국의 전통놀이인 ‘석전’을 설명하는 기사가 발굴됐다.

16일 영국인 역사연구가 에이드리언 코웰(62·싱가포르 거주)에 따르면 베델은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하기 전 데일리 크로니클에서 짧은 특별통신원으로 활동하면서 1904년 4월 총 두 건의 기사를 썼다. 학계에선 그간 베델이 경운궁 화재 기사 하나만 쓰고 회사를 떠난 것으로 봤다. 코웰은 비슷한 시기 신문을 검색하다가 뉴질랜드 웰링턴에서 발행됐던 ‘왕거누이 크로니클’에서 1904년 7월 20일자 기사에서 어니스트 베델의 이름을 확인했다. 신문엔 해당 기사가 “데일리 크로니클의 서울 특별통신원 어니스트 베델이 4월 1일자로 쓴 기사”라고 쓰여 있다.

기사는 돌팔매질을 하며 싸우는 한국의 전통놀이 ‘석전’(Stone fighting)을 묘사했다. 베델은 “200~300명쯤 되는 남성들이 서로 마주보면서 돌을 던진다”고 현장을 스케치했고, “서로 죽일 의도를 가지고”, “부상을 입거나 종종 죽는 사람도 발생한다”며 석전의 위험성을 알렸다. 아울러 “(석전에 참여하는 이들의) 전체적인 움직임이 마치 축구와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코웰은 이 기사를 뉴질랜드 신문에서 찾을 수 있던 이유에 대해 “데일리 크로니클이 이 기사를 베델에게 쓰도록 했지만 실제로 신문에는 싣진 않았을 수 있다”면서 “훗날 데일리 크로니클의 기사를 받은 왕거누이 크로니클이 나중에 이를 게재한 것 같다”고 말했다.

싱가포르 오경진 기자 oh3@seoul.co.kr

2018-08-17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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