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해인, 하준, 민식, 태호, 한음… “우리 아이들 이대로 잊혀지나요”

[단독] 해인, 하준, 민식, 태호, 한음… “우리 아이들 이대로 잊혀지나요”

김진아 기자
김진아, 강윤혁, 신형철 기자
입력 2019-11-26 17:50
업데이트 2019-11-27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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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폐기 위기 ‘어린이 교통안전 법안’… 아이 잃은 부모들 눈물의 호소

한음이와 하준이, 태호와 유찬이, 해인이 그리고 민식이까지. 교통사고로 먼저 하늘로 떠난 6명의 아이는 법안 이름이 돼 남았다. 하지만 이들 법안은 길게는 3년 이상 국회에 계류 중이고, 부모들은 ‘같은 사고가 또 나서는 안 된다’며 눈물로 법안 통과를 호소하고 있다. 다음달 10일까지 진행되는 20대 정기국회의 남은 시간은 불과 14일이며, 여야 합의로 임시국회가 열린다 해도 연말까지 한 달 남짓 남았을 뿐이다. 이 법안들은 이번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하면 자동 폐기되며, 아이들의 이름도 그대로 사라진다. 다소 뒤늦은 감이 있지만 더불어민주당과 정부는 26일 어린이 교통안전 강화 대책을 내놨다. 어린이 보호구역(스쿨존) 내 과속단속카메라 8800대와 신호등 1만 1260개 설치를 위해 내년도 예산에 1000억원을 반영하기로 했다. 서울신문은 이날 이들 부모와 인터뷰를 했다. 부모들은 최근의 높은 관심에도 ‘20대 국회에서 아이들법이 통과될 것 같으냐’는 질문에 긍정적인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뜨거운 관심만큼 식는 속도도 빨랐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의원님들 자식이 사고를 당했다면 3년 이상 계류됐을까요?” 어린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들이 국회에 던지는 질문이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강윤혁 기자 yes@seoul.co.kr·신형철 기자 hsdor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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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인양 가족 “국회는 정쟁이 먼저”

고 이해인양의 아버지 이은철(38)씨는 “해인이법이 3년 3개월째 보류 중인데, 법을 다루는 의원이 이런 사고를 당했다면 이렇게 논의도 없이 계류됐겠느냐”고 되물었다. 이씨는 또 “의원들이 본인 이익이 걸린 쟁점을 챙기느라 바쁜 것이지, 아이들 이름이 붙은 교통법을 챙겨 볼 시간이 없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덧붙였다.

경기 용인시에 살던 해인이는 2016년 4월 어린이집에서 하원하던 중 비탈길에 미끄러진 차량에 치여 세상을 떠났다. 민주당 표창원 의원이 같은 해 8월 ‘해인이법’을 발의했지만 여전히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이씨는 20대 국회에서 아이들의 이름이 붙은 교통안전법안이 모두 통과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우선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며 “언론을 중심으로 관심이 늘면서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기는 하지만, 5개 법안을 묶어서 처리해도 될까 말까 한데 하나씩 보여주기식으로 처리되는 것 같아 걱정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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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하준군 가족 “2주밖에 안 남았는데…”

고 최하준군의 어머니 고은미(37)씨는 하준이법(주차장법 개정안)이 지난 25일 발의된 지 4개월 만에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교통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극적으로 통과된 데 대해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기분”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2017년 10월 서울랜드 나들이 중 경사진 주차장에 세워져 있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 미끄러져 내려와 하준이와 고씨를 덮쳤고, 하준이는 사고가 난 지 한 시간 만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하준이법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기까지 포기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고씨는 “민식이법은 문재인 대통령이 이야기를 해서 부각이 됐지만, 민식이법이 통과되면 다 되는 것처럼 분위기를 몰아가면 안 된다”며 “정기국회 종료까지 2주밖에 안 남았는데 국회와 정부가 빨리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 달라”고 호소했다. 이어 “이번이 절박하고 소중한 기회”라면서 “법안들이 사장돼 우리 아이들을 또 허망하게 떠나보낼 수는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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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식군 가족 “이런 관심 다시 없을 듯”

고 김민식군의 아버지 김태양(34)씨는 “다른 것도 아니고 아이들 안전을 위한 것이고 애들이 희생됐는데, 답답한 현실”이라고 밝혔다.

민식이법은 지난 9월 충남 아산의 한 스쿨존에서 김군이 교통사고로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추진됐다. 김씨는 “저희는 그전에도 민식이법 청원을 진행했고 기자회견 등 다양한 활동을 했다”며 “그렇지만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문 대통령이 ‘국민이 묻는다’에서 저희를 처음으로 지목해 이슈가 됐다”고 밝혔다. 이어 김씨는 “감사하고 다행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씁쓸하다”고 토로했다.

그는 상임위원회에 속한 모든 정당 구성원들이 법안 처리에 동참할 것을 촉구했다. 김씨는 “자유한국당이 움직여야 법안이 통과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면서 “한국당이 적극적으로 움직여 달라”고 호소했다. 다행히 민식이법은 27일 열리는 행안위 전체회의를 통과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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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호군 가족 “태호 같은 아이 없도록”

고 김태호군의 아버지 김장회(36)씨는 “태호와 같은 아이가 없도록 하겠다고 하늘나라에 먼저 간 태호와 약속했다”고 말했다. 태호는 고 정유찬군과 지난 5월 인천에서 ‘축구클럽’ 승합차를 타고 가던 중 운전자 과속 및 신호 위반 때문에 발생한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이에 정의당 이정미 의원 등은 영업용차량이 아니더라도 어린이를 탑승시켜 운행하는 모든 차량을 신고·등록하도록 하는 ‘체육시설의 설치·이용에 관한 법률 개정안’ 등을 발의했다. 법안에는 이들 차량이 운행기록장치를 의무 설치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김씨는 법 통과가 요원한 데 대해 “답답해서 저희가 지금 나서고 있다. 법안심사소위 때마다 찾아가 의원들께 호소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이들의 이름이 붙은 5개 법안 중에 단 한 개라도 통과됐으면 하는 게 김씨의 솔직한 심정이다. 그는 “저희를 만나는 모든 분이 공감해 주고 함께해 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사실 아직 이뤄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박한음군 가족 “간절한 심정 알아 달라”

고 박한음군의 아버지 박관영(48)씨는 “죽은 아이들의 이름을 딴 법안을 정치권이 생색내기로 이용하면 안 된다”며 울먹였다. 광주의 한 특수학교에 다니던 한음이는 2016년 7월 동행 교사의 방치로 통학버스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돼 68일간 투병하다 숨졌다. 이후 유사 사고를 막기 위한 법안이 만들어졌지만, 3년 넘은 26일 현재까지 방치됐다.

그는 “가족들은 소리 없는 긴 싸움을 하고 있고 아이들의 빈자리에 머물며 죽을 때까지 슬퍼할 수밖에 없다”면서 “민식이법뿐만 아니라 다른 아이들의 법안까지도 조금씩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했다. 박씨는 아이들의 생명 안전에 대한 문제가 정치적 이득을 위한 도구가 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그는 “아이들이 어이없는 사고로 죽고 나면 그 아이의 이름을 딴 법안이 나오는 현실이 안타깝다”면서 “죽은 아이의 이름을 딴 법안을 내는 부모의 간절한 심정을 이해해 달라”고 호소했다.
2019-11-27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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