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유치에 큰 힘 실어준 ‘체육 사랑 대통령’

월드컵 유치에 큰 힘 실어준 ‘체육 사랑 대통령’

입력 2015-11-22 14:47
업데이트 2015-11-22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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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새벽 서거한 김영삼 전 대통령은 생전 ‘조깅’이 그의 트레이드 마크 가운데 하나로 꼽힐 정도로 스포츠를 좋아했다.

해외 순방 중에도 조깅을 빠트리지 않고 건강을 관리한 김 전 대통령은 한국 스포츠 발전에도 큰 공을 세웠다는 평을 듣는다.

‘문민정부’ 시절 한국 스포츠 최대의 업적으로는 역시 2002년 한일 월드컵 축구대회 유치가 첫 손에 꼽힌다.

우리나라는 1990년 6월 당시 김우중 대한축구협회장이 2002년 월드컵 유치 의사 표명을 담은 서한을 국제축구연맹(FIFA)에 보내면서 처음 대회 유치 의사를 보였다.

그러나 이후 경기장 건설 등 여러 부문의 재정 부담이 크다는 이유로 논의에 진척이 없었다.

대통령 선거 공약으로 2002년 월드컵 유치를 내걸었던 김 전 대통령은 1993년 2월 취임 직후 월드컵 개최가 국위 선양과 국민 생활에 미치는 파급 효과가 크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대회 유치에 큰 힘을 실었다.

새 정부의 ‘월드컵 유치 드라이브’에 힘입어 그 해 12월 대한축구협회가 2002년 월드컵 유치를 공식적으로 발표했고 1994년 유치위원회가 발족하면서 2002년 ‘4강 신화’의 첫 삽이 떠진 셈이다.

1996년 5월 국제축구연맹(FIFA) 집행위원회에서 한국과 일본의 월드컵 공동 개최가 결정되는 순간까지 김 전 대통령이 직접 FIFA 집행위원들을 직접 만나는 등 막후에서 많은 힘을 실어준 것으로 알려졌다.

인기 스포츠인 야구와 축구장에 모습을 자주 드러내며 친근한 모습을 보인 것도 국내 스포츠계에 커다란 힘이 됐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4년과 1995년 프로야구 한국시리즈에 2년 연속 시구를 맡았고 1995년 프로야구 개막전 삼성과 LG의 잠실 경기에도 시구자로 나서 환호를 받았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5공화국 시절에 출범한 프로야구와 프로축구가 흔히 말하는 ‘3S 정책’의 하나로 추진됐다는 주장도 있어 ‘문민정부’의 대통령으로서 프로 스포츠를 멀리 할 법도 했지만, 김영삼 대통령의 스포츠 사랑은 거침이 없었다.

월드컵 유치가 한창이던 1995년 5월 한국과 유벤투스의 친선경기, 6월 코리아컵 국제축구대회에서 연달아 시축을 하며 축구 팬들과도 만남의 시간을 가졌고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축구 예선 일본과 경기에서 결승골을 넣은 최용수 현 FC서울 감독에게는 직접 축하 전화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이후로는 태릉선수촌에 배드민턴 전용 훈련장을 만들어줄 것을 지시하는 등 스포츠 전반에 큰 관심을 보였다.

그는 퇴임 이후인 2008년에는 한국티볼협회 총재를 맡아 스포츠와 인연을 이어갔고 배드민턴도 수시로 즐기는 등 스포츠 동호인으로 건강을 유지해왔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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