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1929년 2월 7일자에 실린 건양사의 한옥 분양 광고.
건양사를 세운 정세권(1888~1965)은 광고에 나오는 북촌 일대와 성북동, 혜화동, 창신동, 서대문, 왕십리 등 경성 전역에 한옥 단지를 건설한 일제강점기의 ‘건축왕’이라 불리는 인물이다. 그가 개발한 동네는 경성의 뉴타운이라고 할 만하다. 오늘날 북촌 한옥마을이 외국인들이 즐겨 찾는 관광지가 된 것은 정세권의 덕이다. 건양사는 토지 매입과 기획, 설계, 시공, 금융까지 부동산 개발의 모든 과정을 진행했다. 정세권이 지은 집은 수도와 전기가 들어오고 작은 마당이 있는 아담한 한옥으로 부엌 바닥에 타일을 깔고 석탄 아궁이를 설치한 개량식이었다. 그는 “조선 집이어야 조선 사람이 살기 편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춘원 이광수의 세검정 집과 배재학당 대강당도 그가 지었다.
정세권은 경남 고성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진주사범학교를 졸업하고 23살에 고성군 하이면 면장에 임명됐다. 그는 면장을 하면서 방풍림 조성 사업, ‘대동계’라는 저축계 발족, 잠업조합연습소 설립 등의 치적을 남겼고 특히 초가집을 기와집으로 바꾸는 주택 개량에도 힘을 쏟았다고 한다. 1919년 3·1 운동 후 일제의 주구 노릇을 하기 싫어 면장을 그만두고 서울로 올라와 건양사를 설립했다. 그의 항일 의지는 그 후의 행적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부동산 개발로 돈을 번 정세권은 민족자본가로서 조선물산장려운동과 신간회에 참여했다. 특히 이극로와의 인연으로 서울 화동의 2층 건물과 대지를 조선어학회에 회관으로 쓰라고 기증하고 운영 자금을 대주는 등 조선어학회 활동도 지원했다. 정세권은 이런 이유로 한글학자들과 함께 일제에 체포돼 보름 동안 고문을 당했다. 일제는 그것도 모자라 건축 면허를 박탈하고 뚝섬에 있는 그의 땅 3만 5000평을 빼앗았다. 정부는 1990년 정세권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손성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2021-04-19 3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