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 흑백사진 고수하는 ‘회색의 달인’
‘새’ 연작 26점, 새달 2일까지 갤러리나우 전시
물보라를 일으키는 새들의 날갯짓과 물가에 일렁이는 그림자, 저 멀리 점처럼 박힌 새의 무리가 대비를 이루는 작품 ‘새 135’(50×61㎝). 갤러리나우 제공
그가 이번엔 ‘새’ 연작을 들고 왔다. 지난 10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갤러리나우에서 개막한 개인전에 새를 촬영한 작품 26점을 공개했다. 창공을 홀로 나는 새, 물위에서 헤엄치는 새의 무리, 하늘을 뒤덮은 철새들의 군무가 안개에 싸인 듯 흐릿한 회색 조로 펼쳐져 마치 꿈인 양 환상인 양 비현실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사진이 흐리니까 자세히 보려고 가까이 다가가는데 떨어져서 봐야 외려 잘 보인다”고 조언했다. 말 그대로였다. 뒷걸음질할수록 피사체의 윤곽이 점점 선명해졌다. 그의 사진들에는 디지털 기술을 빌린 어떤 인위적인 가공이나 첨삭이 없다. 현장에서 촬영한 사실 그대로의 자연이 담겼을 뿐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회화적인 느낌이 가능할까.
촬영부터 인화까지 철저하게 수작업을 고수하는 민병헌은 “자연이 연출한 광경을 있는 그대로 촬영하기 때문에 내 작품은 어떤 사진보다 사실적”이라고 했다.
이전 연작 작업은 주제를 정한 뒤 3~4년 긴 시간을 두고 피사체를 촬영하는 방식이었다. 이번 ‘새’ 연작은 달랐다. 지난해 과거 필름들을 정리하다 새가 찍힌 작품이 많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1년간 집중적으로 작업했다고 한다. 촬영지는 집과 작업실이 있는 전북 군산 인근 서해안이었다. 전시회에는 서해안에서 찍은 작품과 이전에 촬영한 작품이 섞여 있다. 개인전에 맞춰 프랑스 최대 사진 출판사인 ‘아틀리에 EXB’에서 ‘새’ 연작 50여점을 실은 사진집도 나왔다.
‘새 71’. 50×61㎝.
‘새 57’. 28×35㎝
‘새 20’. 28×35㎝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