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전 대통령 22일 서거… 유족·행자부 국가장 실무 합의

김영삼 전 대통령 22일 서거… 유족·행자부 국가장 실무 합의

김유민 기자
김유민 기자
입력 2015-11-22 10:09
업데이트 2015-11-22 10:22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1927년 출생 향년 88세… 사인은 패혈증·급성심부전

영삼 전 대통령이 22일 새벽 서거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이날 0시21분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에서 혈액감염 의심 증세로 치료를 받던 중 숨을 거뒀다고 이 병원 관계자가 전했다. 사진은 2013년 김 전 대통령의 모습. 연합뉴스
영삼 전 대통령이 22일 새벽 서거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이날 0시21분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에서 혈액감염 의심 증세로 치료를 받던 중 숨을 거뒀다고 이 병원 관계자가 전했다. 사진은 2013년 김 전 대통령의 모습. 연합뉴스
장지는 현충원…낮 12시30분 임시국무회의서 공식 결정

차남 현철씨 등 가족들 임종… 9선 국회의원
문민정부 수립, 하나회 숙정·금융실명제 도입
재임중 IMF 관리 국가부도 사태 초래 ‘그림자’

김영삼(YS) 전 대통령이 22일 향년 88세의 나이로 서거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이날 오전 0시 22분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에서 패혈증과 급성심부전 치료 중 숨을 거뒀다. 지난 19일 정오쯤 고열과 호흡곤란 증상으로 입원했으며, 상태가 악화돼 21일 오후 중환자실로 옮겨 치료를 받았지만 상태가 악화돼 사망에 이르렀다고 서울대병원 측은 설명했다.

1993년부터 1998년까지 제14대 대통령을 지낸 김 전 대통령의 서거로 한국 현대정치를 양분해 이끌어왔던 김대중·김영삼으로 상징되는 ‘양김 시대’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1927년 12월20일 경남 거제군 장목면 외포리에서 아버지 김홍조와 어머니 박부연의 외아들로 태어난 김 전 대통령은 장목소학교, 통영중학교, 경남고등학교와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했다. 1954년 3대 민의원 선거에 최연소로 당선돼 제 5·6·7·8·9·10·13·14대 국회의원까지 9선 의원을 지냈다. 야권 후보단일화에 실패한 채 통일민주당 후보로 독자출마한 1987년 12월 대통령선거에서 당시 민주정의당 노태우 후보에게 패해 2위로 낙선했다.

‘서울의 봄’에 만난 YS와 DJ
‘서울의 봄’에 만난 YS와 DJ 김영삼 당시 신민당 총재와 김대중씨가 1980년 5월 16일 현시국관련 수습책 논의, 비상계엄의 즉각해제와 정치일정의 연애 완결 등 6개항의 시국수습대책을 공동발표했다. 두 사람은 이날 오전 9시 반부터 1시간 동안 동교동 김대중씨 자택에서 만났다.
이후 민주정의당·신민주공화당과의 3당 합당을 통해 탄생한 거대 여당 민주자유당에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 굴에 들어간다’고 합류, 박철언 전 의원과의 사활을 건 대결 끝에 대선후보를 쟁취했다. 1992년 대선에서 필생의 라이벌 김대중(金大中) 후보를 물리치고 당선돼 ‘군정 종식’을 이뤄내며 ‘문민시대’를 열었다.

김 전 대통령은 야당 당수 세 차례, 야당 원내총무 다섯 차례를 역임하며 평생의 민주화 동지이자 정치 라이벌이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군사정권에 맞섰다. 양김의 ‘상도동·동교동’은 민주화 세력의 양대 산맥으로 역사의 한 획을 그었다.

1970년대 후반에는 야당 당수로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신 체제에 정면으로 맞서다 1979년 총재 직무를 강제로 정지당하고 의원직에서도 제명되는 고초를 겪기도 했다. 신군부 정권 시절이던 1980년대 들어서는 23일간의 단식 투쟁, 장기간의 가택연금 등의 모진 정치적 박해와 고난을 겪으면서도 민주화추진협의회 결성, ‘87년 6월 항쟁’ 주도 등을 통해 민주화 운동을 이끌며 군사정권 기반 약화와 직선제 개헌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

‘대도무문’을 좌우명으로 삼았던 김 전 대통령은 평생을 민주화 투쟁과 인권 증진의 외길을 걸으면서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자신의 신조처럼 군사독재 종식과 민주체제 정착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재임 기간 하나회 청산과 금융·부동산 실명제 도입, 지방자치제 실시, 전방위적 부패 척결 등을 통해 사회 시스템을 전반적으로 한 단계 끌어올리는 성과를 냈다. 그러나 임기 중 친인척 비리와 외환 위기에 따른 국가 부도 사태 초래로 임기 초반 누렸던 국민의 절대적 지지를 대부분 상실하며 정치적 그림자도 있다.

김 전 대통령은 퇴임 후에도 PK(부산·경남)를 지역 기반으로 삼은 민주화 세력을 일컫는 ’상도동계‘의 영원한 리더로서 오랫동안 현실 정치에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평생 거르지 않은 새벽 조깅과 영문이니셜 애칭 ’YS‘는 그의 트레이드마크였다.

유족으로는 부인 손명순 여사와 딸 혜영(63), 혜정(61), 혜숙(54)씨, 아들 은철(59), 현철(56) 씨 등 2남 3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에 마련됐다. 유족 측은 행정자치부와 장례를 국가장으로 거행하기로 합의했다.

정부는 22일 낮 12시 30분 김 전 대통령의 장례 절차를 논의하는 임시 국무회의를 열고 이를 공식 결정할 예정이다. 임시 국무회의에서는 국가장 진행, 장례위원회 구성, 장지, 영결식과 안장식 등 장례 절차 전반을 심의한다. 국가장 절차는 정부와 유족의 협의 후 행정자치부 장관이 제청하면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현직 대통령이 결정한다. 5일간의 장례 절차가 마무리되면 김 전 대통령은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에 안장될 예정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많이 본 뉴스
성심당 임대료 갈등, 당신의 생각은?
전국 3대 빵집 중 하나이자 대전 명물로 꼽히는 ‘성심당’의 임대료 논란이 뜨겁습니다. 성심당은 월 매출의 4%인 1억원의 월 임대료를 내왔는데, 코레일유통은 규정에 따라 월 매출의 17%인 4억 4000만원을 임대료로 책정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입니다. 성심당 측은 임대료 인상이 너무 과도하다고 맞섰고, 코레일유통은 전국 기차역 내 상업시설을 관리하는 공공기관으로 성심당에만 특혜를 줄 순 없다는 입장입니다. 임대료 갈등에 대한 당신의 의견은?
규정에 따라 임대료를 인상해야 한다
현재의 임대료 1억원을 유지해야 한다
협의로 적정 임대료를 도출해야 한다
모르겠다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