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많은 영화인들은 ‘아바타’의 흥행 성과가 한국 영화계에 미칠 영향을 주시하고 있다. 유인택(55) 아시아문화기술투자 대표. 심재명(47) ㈜명필름 대표. 서우식(43) ㈜바른손 부사장. 연기자 조재현(45). 쓰찌다 마키(46) 서울스쿠프 기자 등 투자 제작 기획 연기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중인 국내 영화계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아바타’ 이후 한국영화가 나아갈 길에 대해 물었다.
◇기록은 깨지기 위해 있는 것. 그러나…
질문에 응한 영화인 대부분은 ‘아바타’의 기록 경신에 애써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다고 입을 모았다. 어차피 기록은 깨지기 위해 존재하므로. 언젠가는 ‘괴물’의 흥행 기록도 누군가에 의해 갈아치워질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한국영화가 오랫동안 누렸던 흥행상의 ‘메리트’가 사라졌다는 것에 관해서는 의견이 일치했다.
10년전 ‘공동경비구역 JSA’를 제작해 한국형 웰메이드 블록버스터의 새로운 전형을 제시했던 심재명 대표는 “관객들이 쿨해졌다”고 분석했다. 관객들의 성향이 재미있는 영화라면 국적을 따지지 않고. 영화 자체에 의미를 두는 쪽으로 바뀌었다는 뜻이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과 ‘마더’의 기획과 프로듀서를 거친 서우식 부사장 역시 비슷한 시각이다. 서 부사장은 “지난해 ‘해운대’와 ‘국가대표’의 흥행 성공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영화를 통해 역사적·사회적 의미를 찾는 경향은 급속도로 사라지고 있다”며 “이같은 경향에 방점을 찍은 작품이 바로 ‘아바타’다. 영화를 순수한 엔터테인먼트적인 경험으로만 받아들이는 관객들이 늘어나면서 한국영화가 과거 국내 관객과 공유하는 동질감적인 측면이 서서히 퇴색되고 있다”고 밝혔다.
유인택 대표는 ‘아바타’ 이후로 한국영화가 이전과 달리 외화와 더욱 치열한 배급 경쟁을 벌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 대표는 “성수기를 제외하면 예로부터 한국영화는 외화를 큰 경쟁 상대로 여기지 않았다. 한국영화에 대한 관객의 기본적인 수요가 탄탄했기 때문”이라며 “그러나 ‘아바타’를 기점으로 한국영화의 흥행상 이점은 많이 없어질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바타’를 보고 초심으로 돌아가라!
최첨단 3D 제작 방식도. 30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진 거대한 제작비도 실은 문제가 아니라고? ‘아바타’에서 충실한 기본기의 중요성을 다시 배웠다는 이들이 의외로 많았다. ‘아바타’가 지닌 이야기의 힘에서 향후 한국영화의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시각이다.
서 부사장은 “누구나 알다시피 ‘아바타’는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이제껏 모두가 알고 있던 기존의 이야기들을 짜임새 있게 조립했을 뿐’이라며 “스토리텔링의 원천적인 힘을 중시하는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태도에서 큰 충격을 받았다. 제작자의 처지에서 앞으로 기본기가 탄탄한 영화가 아니라면 결코 살아남을 수 없다는 걸 절감했다”고 털어놓았다.
심 대표는 “1만원 남짓한 관람료를 내고 3000억원 이상의 제작비가 투입된 콘텐츠를 경험했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시각적 충격을 준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1000만이 넘는 국내 관객들이 시각적 충격만을 느끼려고 극장에 온 것은 절대로 아니다”며 “무엇보다 서사 구조 등 기본에 충실한 영화였기 때문에 성공했다는 것을 국내 영화인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유 대표와 오랫동안 한국영화를 취재해 온 쓰찌다 마키 기자도 “거대 자본만이 살아남는다고 잘못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지금은 거꾸로 한국영화 본연의 완성도에 충실해야 할 시점”이라며 블록버스터의 흥행 신화에만 자칫 매달릴 수 있는 상황을 경계했다.
한편. ‘아바타’의 성공이 국내 영화계에 불어넣을 긍정적인 기운을 점치는 경우도 있었다. 비주류 저예산 영화와 블록버스터를 자유롭게 오가고 있는 배우 조재현은 “‘아바타’는 한국 영화계에 새로운 장르를 받아들이는 힘을 제공할 것이다. 3D 전문 인력이 이번 기회를 통해 양성될 수 있다면. 한국영화의 장래가 밝아질 수도 있다”며 “되돌아보면 한국영화는 언제나 위기였다. 위기를 헤쳐나가는 적응력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한국영화가 있었다”고 낙관했다.
조성준기자 when@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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